[제13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60집 대 60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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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승 2국> ○·이세돌 9단 ●·쿵제 7단

제17보(121~130)=이세돌 9단에 대한 징계안 통과와 휴직계 제출 이후 인터넷 바둑 사이트의 댓글이 도를 넘었다. 극언을 동원한 인신 공격이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토론은 증발되고 적군과 아군으로 갈린 채 좌빨과 꼴보수란 용어마저 난무한다. 기자로서 살펴보지 않을 수는 없지만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막히고 슬퍼져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다. 바둑 두는 사람이 점잖다는 얘기는 다 허언이었던가. 논리적으로 조용히 자기 주장을 펴면 바보가 되는 것인가. 아무리 익명이라지만 너무한다는 느낌이다. 진심으로 자중하기를 권하고 싶다.

부산에서 삼성화재배 준결승을 끝내고 KTX를 타고 올라오며 이세돌 9단과 맥주를 마시던 때가 떠오른다. 장난기 많고 시원시원한 이세돌. 초롱초롱한 눈을 지닌 이세돌. 그는 지난 18일 중국리그에 출전하려고 항저우 공항에 내렸다가 열이 높아 새벽까지 격리되는 바람에 대국을 포기했다. 그는 체온이 37도였는데(신종 플루 때문에 37.5도부터는 입국 불허라고 한다) 이번 사태 때문이구나 싶어 또 한번 슬퍼졌다. 과연 뫼비우스의 띠를 풀 묘수는 없는 것일까.

이세돌 9단은 백△로 차단해 중앙 흑을 공격한다. 쫓기던 백이 이젠 보따리를 내놓으라고 추궁하고 있다. 123으로 달아나자 잠시 계가에 몰두하던 이세돌은 더 이상 쫓지 않고 반상 최대의 126에 발을 돌린다. 이것으로 흑집은 대략 60집. 백집도 줄잡아 60집. 덤 정도 불리한 흑이 이를 만회할 방법은 과연 무엇일까.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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