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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 뒤엎은 파격 인사 … 인적 쇄신 신호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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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젊은 기수를 발탁해 검찰을 확 바꾸는 게 어떠냐.” 임채진 전 검찰총장 퇴임 직후 이명박(MB)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했다는 이야기다.

21일 뚜껑이 열린 검찰총장 인선에서 이 말은 결국 현실화됐다. 하지만 이 말을 직접 들은 참모들 중에서도 사시 22회인 천성관 서울중앙지검장의 발탁을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사시 19회인 임 전 총장과 천 후보자 사이에 20회 2명, 21회 5명 등 7명의 현직 검찰 선배가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민정수석실 핵심 관계자들조차 지난 주말까지 “대구 출신 권재진(사시 20회) 서울고검장과 광주 출신 문성우(사시 21회) 대검 차장의 2파전”이라고 확신했다. 하지만 ‘권재진 카드’에 비해 지역 안배 효과를 살릴 수 있고, ‘문성우 카드’보다 세대 교체 이미지가 확실한 ‘충청 출신 천성관 카드’가 막판 급부상한 것이다.

천 후보자가 발탁된 결정적 배경 중 다른 하나는 현 정부를 코너에 몰았던 지난 1월 용산 재개발 농성자 사망사건 수사다. “이 대통령은 당시 천 후보자가 주도했던 서울중앙지검 수사를 ‘여론에 휘둘리지 않은 소신 있는 수사’로 평가했으며 천 후보자를 신뢰하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이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얼굴도 모르는 사람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은 역대 대통령 중 내가 처음일 것”이란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과거의 인연이나 출신 지역에 얽매이지 않은 인물 중심의 인사였음을 강조한 것이다.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을 국세청장에 기용한 것에 청와대는 ‘MB식 실용 인사’란 점을 부각시켰다. 장관급인 백 위원장을 차관급인 국세청장에 기용한 것은 분명 이례적이지만 이 대통령은 이 같은 인사를 여러 번 했었다. 산업자원부 장관을 지낸 윤진식씨를 차관급인 경제수석에, 4성 장군 출신인 김인종씨를 차관급 경호처장에 기용한 게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이 대통령은 내부 출신 청장들의 비리가 꼬리를 물었던 국세청의 개혁을 주도할 ‘외부 출신의 중량급 인사’를 물색해 왔고 그 답이 백 후보자였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이 21일 청와대에서 신임 검찰총장에 천성관 서울지검장, 국세청장에 백용호 공정거래위원장을 내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오종택 기자]


청와대는 “출신 지역은 우선 고려사항이 아니었다”고 밝혔지만 천 후보자와 백 후보자는 모두 충청도 태생이다. 게다가 백 후보자는 전북 익산의 남성고를 졸업했다. ‘영남 독식’ 비판을 불식시키기 위해 청와대가 지역 안배에 공을 들인 흔적이 있다. 청와대는 특히 천 후보자 발탁과 관련,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권교체기에 3개월간 총장을 지낸 김각영씨를 제외하면 충청권 출신 검찰총장은 전두환 전 대통령 때 김석휘 총장 이후 24년 만”이라고 강조했다.

◆청와대·내각 쇄신의 신호탄 될 수도=“국면전환용 개각은 바람직하지 않고 장관을 자주 바꿔선 안 된다” 는 거듭된 청와대의 입장 천명에도 불구하고 이번 인사의 파장이 인적 쇄신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이 적지 않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예상을 뒤엎은 이번 파격 인사의 흐름은 향후 대폭적인 인적·국정 쇄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개각을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끌려가는 개각은 하지 않겠다’는 게 이 대통령의 정확한 속마음이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청와대 개편도 인적 쇄신을 주저하다 결국 수석 전원을 교체하는 파격적 초강수를 둔 바 있다. 청와대는 ‘근원적 처방’이나 ‘인적 쇄신’에 앞서 국정 주도권의 회복을 다짐하고 있다. 수요일 대통령 주재 수석회의를 주초인 월요일로 옮겨 공격적인 의제 설정을 천명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우리 경제가 안정적인 관리 국면에 들어섰다고 보고 이 대통령은 향후 정무적인 분야에 많은 시간을 할애할 것 ”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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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승욱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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