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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투기·함정 '훈련 갈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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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기름이 모자라 군사훈련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군의 항공기와 함정을 돌릴 기름이 부족하다. 국방부가 20일 펴낸 '미래를 대비하는 한국의 국방비 2004' 책자에서 발표한 내용이다. 국방부가 밝힌 2003년 기준 적정 유류 보급량은 600만 드럼이다. 군 장비 수송과 병력 이동, 전투기.함정.전차 등의 기동훈련에 들어가는 양이다. 하지만 지난해 실제 유류 보급량은 499만 드럼이었다. 적정량의 83.2%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지난해 공군 조종사의 연간 비행훈련시간은 기준시간 160시간에 못 미치는 145시간에 불과했다. 미국의 205~252시간, 대만 180시간 등에 비하면 떨어지는 수치다. 공군에 따르면 F-4 전투기 한 대를 한 시간만 띄워도 기름값으로 280만원이 든다.

전차와 함정의 운영도 적정 가동시간보다 30% 이상씩 부족한 수준이라고 국방부 관계자는 전했다.

유류 부족은 1997년 외환위기 때 시작됐다. 96년 600만 드럼이었던 유류 보급량은 97년 568만 드럼, 98년엔 480만 드럼으로 급감했다. 외환위기 사태를 맞아 정부가 긴축 예산을 짜며 국방비를 증액하지 않거나 오히려 감액했기 때문이다. 97년 13조7865억원이던 국방비는 98년 13조8000억원으로 제자리를 기록했다. 99년엔 13조7490억원으로 오히려 2년 전보다 줄었다. 그렇다고 계약이 이미 확정됐던 무기 도입 사업을 대폭 축소할 수도 없었던 국방부는 기름이나 교육용 탄약 등을 줄이는 방식으로 예산을 편성했다. 국방부에 따르면 지난해 교육용 탄약 보급률은 지급 기준의 88%에 불과하다. 지난해 미군 한명당 개인화기(소총) 훈련에 1142발을 쓴 반면 한국군은 247발만을 쐈다.

탄약은 국내 업체에 맡겨 적정량을 채워 넣을 수 있지만 유류 공급은 국제 정세와 직결돼 있다. 지난해 가격 기준으로 600만 드럼의 유류를 사들이는 데는 3900억원이면 됐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이라크 정정 혼란 등으로 유가가 폭등했다. 현 시가를 적용하면 600만 드럼을 채우는 데는 5000억원으로 올라간다.

국방부는 일단 내년에도 기름을 적정량만큼 공급하기는 어렵다는 판단으로 대안을 강구 중이다. 육군과 해군은 도상훈련을 확대하고, 비행 훈련도 실제 조종이 아닌 시뮬레이션 훈련 등을 늘려 유류 부족에 대응키로 했다.

그러나 국방부 관계자들은 "이가 없으니 잇몸으로 때우자는 방식"이라며 "충분한 방위 태세를 유지하려면 적어도 각군이 필요한 훈련용 유류는 적정 기준에 맞춰 공급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채병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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