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아라리 난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0면

제3장 함부로 쏜 화살

변씨로선 더 이상 깊숙이 개입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한마디였다.

직업적인 뚜쟁이나 조방꾼이라 할지라도 한술 더 뜨고 나오는 묵호댁의 말에는 아연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었다.

아득한 시선으로 묵호댁의 얼굴만 쳐다보다가 얼버무리고 가게를 나와버렸다.

물론 봉환에게도 묵호댁에게 그런 음흉한 속셈이 있다는 말전주도 하지 않았다. 얼추 담판이 난 것으로 알았던 봉환이가 가게로 돌아간 것은 그날 밤이 깊어서였다. 묵호댁을 만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날 장사한 계산만은 분명하게 마무리지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뒤통수에서 누가 끌어당기고 있기라도 하듯 엉거주춤 가게문을 밀치며 술청으로 들어섰다.

묵호댁의 손끝은 승희만큼이나 맵짰다.

조리대나 술청의 의자들이 승희가 돌아와 정돈한 것처럼 깔끔했다.

인기척을 느낀 묵호댁이 문을 열었다.

술청을 두리번거리고 있는 봉환을 발견하자, 피곤에 지쳐 게슴츠레하던 그녀의 두 눈에 금방 생기가 돌았다.

그러나 거동은 호들갑스럽지 않았다.

"꿔다놓은 보릿자루라면 납쭉 절이나 올리지. 남의 집으로 들어온 사람도 아닌데, 왜 그렇게 엉거주춤 서 있나? 내가 잡아먹기라도 할까 해서 그러나? 그래도 만나보니까 귀엽긴 하구만,빨아줄까 핥아줄까. 이리 와요. 후덥지근한데, 목욕시켜줄게. " 진심이 배어 있지 않았다면, 너무나 호전적이어서 진저리가 쳐질 정도의 말이었다.

묵호댁의 호전성에는 어쩐 셈인지 사람의 말문을 막아버리는 마취제가 배어 있었다.

그러나 봉환은 코대답도 않고 욕실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정말 차가운 물이라도 뒤집어써야 제정신을 차릴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욕실에 들어서는 길로 옷을 훌훌 벗고 벽에 걸린 샤워꼭지를 비틀었다.

그러나 물보라가 쏟아지는 순간 등에 와 닿는 묵호댁의 손길을 느꼈다.

멍에이고 족쇄라는 생각이 봉환의 뇌리를 스쳤다.

주먹은 불끈 쥐었지만, 그 주먹을 휘두를 수는 없었다.

그는 무너지고 있는 자신의 의지를 두 눈으로 빤히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었다.

묵호댁의 손길이 어깨에서부터 등을 타고 볼기짝까지 내려가고 있었다.

발길질이라도 해버린다면, 문짝 아래로 나둥그러지겠지 하는 생각은 뚜렷했지만, 어쩐 셈인지 행동으로 연결시킬 수 없었다.

볼기짝 아래까지 내려간 그녀의 손바닥이 봇도랑 위를 맴도는 소금쟁이의 유희처럼 한 곳에서 맴돌고 있었다.

귀엽기도 하지. 젊은 년들 젖통같이 통통하네. 그렇게 중얼거리며 볼기짝의 비역살에 대고 입을 쩍 맞추었다.

그 순간, 등골이 오싹했지만, 역시 손바닥으로 탁 쳐서 내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앙탈을 부리며 바깥으로만 나돌아다니면 안되지. 내가 너희들 가게 들어먹을까봐 겁내지 마. 나 그런 데데한 여자 아니여. 비누를 스펀지에다 썩썩 문지르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그 스펀지로 어깨와 견대팔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등 뒤쪽을 한곳도 빠트리는 법이 없이 골고루 비누칠을 하더니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살결을 문지르기 시작했다.

승희란 여자하고 정식으로 결혼한 사이도 아니라며? 그런데 뭐가 그렇게 겁이 나서 똥마려운 강아지처럼 정신을 못 차리고 바깥으로만 맴도나? 궁상을 떨어도 한계가 있지 그러면 못써. 정식결혼을 안했으면 그게 바로 내연의 처인가? 그렇고 그런 사이가 분명한데, 그 여자 앞에선 고양이 앞에 쥐처럼 발발 떤다는 소문이 있데? 슬하에 피붙이를 둔 것도 아니고. 돌아서면 그만인데 왜 그렇게 정신을 못차리나? 중얼거리면서도 마사지를 하는 손길은 매우 부드럽고 호색적이었다.

껍질을 홀딱 벗긴 참외를 다루듯 약하지도 않게 그렇다고 강하지도 않게 안마까지 겸한 마사지는 계속되었다.

정말 정식결혼한 사이도 아닌데 내가 왜 승희 앞에선 사족을 못 쓰는 것일까. 그 사이에 묵호댁은 자배기에 받아둔 물을 바가지로 퍼올려 비누칠한 등줄기에 부었다.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 묵호댁은 말했다.

"나한테로 돌아서. "

김주영 대하소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