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맹도 항공기 조종사 될 수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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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전면허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선 시력검사와 함께 색약·색맹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빨강, 녹색, 노랑 등 신호등을 이용한 3색 식별을 통해 운전 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면허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지금까지 색맹 검사는 여러 색깔의 점들 속에서 숫자나 모양을 해독하는 것이었다. 일본 도쿄(東京)대 시노부 이시하라 박사가 고안한 것으로 1917년부터 널리 사용됐다.

자동차 운전자도 색맹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하물며 수백명의 목숨을 좌우하는 항공기 조종사라면 말할 것도 없다. 항공기 조종사는 특히 야간 착륙 시에 활주로에 켜진 불빛의 색깔을 보고 착륙 지점을 파악한다. 착륙시 항공기의 각도에 따라 불빛의 색깔이 바뀐다.

하지만 이시하라 색맹 검사라면 조종사의 꿈을 포기해야 할 사람들이 어엿한 조종사가 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새로운 색맹 검사법이 개발되었기 때문이다.

이시하라식 색맹 검사법은 색맹의 정도는 파악할 수 없다. 하지만 런던시티 유니버시티 연구팀이 최근 개발한 색맹 검사법은 피검자의 색약 정도를 정확하게 측정할 수 있다. 시티 유니버시티에서 개발한 색약 검사를 활용하면 약간의 색약이라고 하더라도 항공기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을 충족하면 얼마든지 조종사가 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새 색맹 검사법은 회색 사각형 안에 색깔을 입힌 블럭을 보여주는데 피검자가 이것을 주시하면 움직인다. 색맹 또는 색약인 사람은 이들 블럭의 움직임을 추적할 수 없다. 블럭이 움직이면서 색깔의 농도가 점점 얕아지는데 얼마만큼 오래 이를 추적하느냐에 따라 색약 정도를 측정하는 것이다.

색맹 또는 색약은 우리 눈에서 빛을 감지하는 세포인 추상체에 이상이 있거나 아예 없는 경우다. 가장 흔한 형태가 빨강색과 녹색을 분간하지 못하는 적록 색맹이다. 날 때부터 색맹인 사람도 많지만 질병이나 약물 복용 때문에 생기기도 한다.

이번 색맹 테스트 개발 연구는 조종사 선발 시험에 공정성을 강화한 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영국 민간항공기구(CAA: Civil Aviation Authority)와 미국 연방항공국(Federal Aviation Administration)이 연구비를 지원했다.

CAA는 새로운 색맹 검사법 개발로 지금까지 색맹 때문에 조종사 시험에서 고배를 마셨던 사람들의 35% 가량을 구제해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색맹은 여성보다 남성에게 많이 나타난다. X염색체에 붙어 유전되기 때문이다. 남성은 X 염색체 하나에만 색맹 유전자가 있어도 색맹이 되는데 반해 여성은 X염색체 2개 모두에 색맹 유전자가 붙어있어야 색맹으로 태어난다.

색맹 검사는 운전수나 조종사는 물론 군인, 경찰, 소방수가 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어서 새 색맹 검사법을 도입할 경우 전세계적인 파급효과가 클 것으로 보인다. CAA 등은 새로운 색맹 검사법을 여러 차례 실시해 본 다음 본격적으로 조종사 시험에 도입할 계획이다.

▶새로운 색약 색맹 테스트 따라 해보기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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