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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이웃을 잘 만나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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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멕시코는 1994~95년의 '페소화 (貨) 위기' 를 2년 정도의 비교적 짧은 기간안에 성공적으로 극복해낸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런데 지난해 7월초 태국에서 시작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외환.금융위기는 근 1년이 돼가는 오늘에 와서도 크게 개선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지 않다.

따라서 멕시코의 경제위기 극복 비법이 무엇이었는지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우스갯소리로만 들릴지 모르나 멕시코의 비결은 다름 아닌 '이웃을 잘 선택한 것' 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나라는 개인과 달라 이웃을 선택해 이사다닐 수 없다. 따라서 이 말은 이웃의 중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이면 된다. 멕시코의 경우에는 다행히도 경제적 호황을 누리던 미국을 이웃에 두고 있었기 때문에 수출촉진을 통해 필요한 외화획득이 가능했으며, 더 필요한 자본도 미국으로부터 쉽게 끌어들일 수 있었던 점이 위기극복에 큰 도움이 됐던 것이다.

그런데 현재 외환.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우리나라를 위시한 아시아 여러 나라의 사정은 어떠한가. 이들은 세계에서 두번째 가는 경제대국인 일본을 이웃에 두고 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본 경제가 불황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은 이들 나라의 위기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계속 약화되는 일본 엔화와 일부 일본계 금융기관들의 융자금회수는 이들 나라의 경제위기를 더욱 심화시키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들 나라는 자기들의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일본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 줄 것을 기대할 것이다.

특히 일본 국내 수요진작을 통한 경기 활성화와 엔화 약화를 막으려는 노력은 물론 오히려 엔화 강화 방안을 마련해줄 것을 기대한다. 이들 나라가 당면한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이 수출 촉진을 통한 경상수지흑자 실현임은 두말할 여지도 없다.

그런데 이들의 수출중 상당 부분을 일본이 흡수해 주지 않는다면, 올해 2천억달러를 상회하는 경상수지적자를 예상하고 있는 미국으로 수출을 돌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게 될 때 미국의 경상수지적자는 오는 11월에 있을 미국 중간선거의 주요 쟁점이 되고, 자칫하면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분위기를 더욱 조장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다시 이들 나라의 외환.금융위기 극복을 더욱 지연시키게 될 것이 뻔하다. 또한 이것은 아직도 아시아의 금융.외환위기에 채 전염되지 않은 홍콩과 러시아 등 이 지역 나라들은 물론 경제적으로 취약한 동구권과 남미 여러나라들 및 일부 산유국마저 위기에 몰아넣게 될 수도 있다.

현재 외환.금융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들의 또 다른 중요한 이웃인 중국의 역할도 중요하다. 지금까지 중국은 위안화의 절하를 자제함으로써 이들 나라의 위기극복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

물론 94년 위안화의 실질적인 대폭 절하가 특히 동남아 여러 나라의 경상수지 악화를 몰고 온 주요한 요인이 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 나라가 위기에 처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수출부진과 경제성장 둔화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절하를 자제해 온 것이다.

중국 위안화의 절하는 결국 이 지역통화의 경쟁적 절하를 몰고와 위안화 절하의 당초 효과를 상쇄하게 될 뿐 아니라 이 지역은 물론이려니와 세계경제 전반에 걸친 악영향을 끼치게 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중국 정책당국이 위안화 절하 자제를 앞으로 상당기간 지속해 주는 게 바람직한 것이다.

끝으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들 스스로 해야 할 일의 중요성이다. 아무리 그들 이웃이 좋은 여건을 마련해 도와주려 한다 하더라도, 스스로 돕지 않는 나라들은 도울 수 없을 것 아닌가.

게다가 일본이 이들 이웃 나라와 온 세계가 기대하는 정도의 역할을 해내기 위해서는 경제개혁에 주력하는 강력한 정치 리더십의 출현이 필요하다고 생각할 때, 적어도 앞으로 상당기간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현재 위기를 맞고 있는 나라들의 위기탈출은 과거 멕시코보다 훨씬 어려운 여건 속에서 이룩돼야 하기 때문에 이들 나라 스스로 할 일이 더욱 많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그 과정이 더 길고 더 힘들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사공일 세계경제연구원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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