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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인연]PD 주철환과 시인 최영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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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6면

주철환 (43) PD는 입버릇처럼 이런 말을 한다.

"영상은 흘러가도 문자는 남는다.

" 산고 끝에 내놓은 작품이 흔적없이 날아감을 안타까워하는 심정. 한편으론 그가 자신의 작업 반대편에 문학을 상정하고 있음을 드러내주는 말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최영미 (37) 시인은 그와 대척점에서 살아간다.

영원히 흐르지 않는 글을 백지에 눌러 쓰며. 최영미에겐 TV가 부러움이자 얼마만큼의 공포다.

화제의 첫시집 '서른, 잔치는 끝났다' (94년) 이후 최근 두번째로 펴낸 시집 '꿈의 페달을 밟고' 에서 그는 이렇게 두려움을 표한다.

"떨리는 엄지손가락이 神의 초록 버튼에 닿는 순간/세계가 당신 앞에서 춤을 춘다/…/제2차 세계대전의 폭음을 대학가요제가 덮어쓰고 (중략)" ( '토요일 밤의 초간편 神' 중에서) 두 사람이 처음 마주친 것은 분명 85년의 어느 날이다. 그러나 기억엔 그 만남이 없다.

시인은 '괜한 고집 때문에 매번 잘리는' 방송작가로, PD는 '방송작가들이 왠지 못마땅했던' 조연출로 MBC 건물 안을 부지런히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완벽한 무명이었던 상대를 알아볼 리 없었다. 그들이 서로를 인식한 건 그로부터 약 10년 후. '우정의 무대' '퀴즈아카데미' 등으로 스타덤에 오른뒤 94년 대학가요제 연출을 맡게 된 PD가 '서른 잔치를 막 끝낸' 시인에게 도움을 청했다.

장대비가 쏟아지던 날 고대 교정에서 열린 그해 대학가요제는 둘에게 선명한 기억으로 남았다. 50년대부터 90년대까지 상아탑의 낭만과 고민을 정리하는 시도를 했다.

TV출연이 결코 적지 않았던 시인이지만 이상하게도 그 날은 꼭 자신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공교롭게 대학가요제 날이 이삿날이었어요. 원룸으로 짐을 옮겼는데 집이 엉망이라 TV를 볼 수가 없는 거예요. 인근 호텔방을 잡았죠. 한데 MBC만 안 나오잖아요. 호텔측을 다그쳐 고친 끝에 겨우 봤지요. " 그 다음엔 시인이 PD를 청했다.

자신이 편집위원으로 일하던 한 잡지에 글을 써 달라 했다. '법과 밥' 이란 수필을 받아든 시인은 PD의 글솜씨에 적잖이 놀랐다.

주철환은 글을 잘 쓴다. 가끔은 "영상보다 글이 낫다" 는 '모욕' 도 듣는다. 최영미는 영상을 좋아한다.

몇년 전엔 영화 주인공 제의를 받고 진지하게 고민한 적도 있었다. 생각날 때면 불쑥 만나 '필름이 끊어지도록' 인생 얘기를 털고, 서로의 작품을 이야기하는 이면엔 아무래도 '가지 않은 길' 에 대한 아쉬움이 자리하고 있는 게 아닐까. 나중에 안 일이지만 둘 사이엔 정말 인연이 많았다.

83년 입사한 PD가 처음 조연출한 프로는 '장학퀴즈' .시인의 얼굴이 첫 전파를 탄 것도 고1때 나와 차점자가 된 장학퀴즈다. '저지르기' 를 즐기는 점에서도 둘은 닮았다.

시를 쓰는 것 조차 '저지른다' 고 표현하는 시인. '스타' 답지 않게 전위적인 아이디어로 윗사람을 고민시키는 PD.이들은 얼마전 의기투합했다. 최영미가 지난해 쓴 유럽문화기행 '시대의 우울' 을 TV에 옮기기로 한 것. 이책 표지에 주철환은 " '최영미의 유럽일기' 와 동행하며 휘파람 불듯 내내 흥얼거린 노랫말은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 였다" 는 추천의 글을 쓰기도 했다.

분명 이것도 저지름인데 어떻게 귀결될지 자못 궁금해진다.

강주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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