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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주부 누드모델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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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96년 12월~97년 1월 서울 예술의전당에서는 '한국 누드미술 80년' 이라는 이색 전시회가 열렸다. 1916년 이후 제작된 1백여점의 누드화를 통해 한국 누드미술사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봤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누드화가는 김관호 (金觀鎬) 다. 그는 1916년 도쿄 (東京) 미술학교 졸업작품으로 두 여인의 목욕장면을 그린 '해질녘' 을 문전 (文展)에 출품해 특선의 영예를 차지했다. 당시는 일반에서 누드화를 수용하기 어렵던 때라 신문들은 사진 없이 기사로만 보도했다. 김관호는 1923년 제2회 선전 (鮮展)에도 누드화 '호수' 를 출품했다.

김관호 의 뒤를 이은 누드화가는 여류화가 나혜석 (羅蕙錫) 이다. 1928년에 그린 '나부 (裸婦)' 는 대표작중 하나로 후에 그녀의 평전 (評傳)에 표지화로 쓰였을 만큼 유명하다. 의자에 비스듬히 앉아 있는 여인의 뒷모습을 그린 이 그림은 현재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 소장돼 있다.

초창기 누드미술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모델 구하기였다. 여염집 여자들이 옷 벗는 일에 나설 리 없었기 때문에 기생.여급 (女給) 등 직업여성을 쓰는 게 보통이었다. 1924년 일본 제전 (帝展)에 '나상 (裸像)' 이 입선된 조각가 김복진 (金復鎭) 은 모델을 구하지 못해 애태우다 소박맞은 한 여인을 가까스로 구해 삼복더위에 방문을 꼭꼭 걸어 잠그고 작품을 제작했다는 일화가 있다.

얼마전 까지만 해도 누드모델은 일부 여성들만의 '특수직업' 이었다. 1백명 내외의 제한된 숫자로는 미술대학들이 필요로 하는 누드모델 수요를 채우지 못해 모델 한 명이 여러 대학에 겹치기 출연하는 인기를 누려 왔다. 지난 95년 모여대 조소과가 신문에 누드모델 모집광고를 두 차례 냈지만 한 명의 지원자도 구하지 못해 외국인 모델로 채운 적도 있다.

온나라를 대혼란에 몰아넣고 있는 IMF 경제위기가 누드모델계에도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남편 실직으로 생계위협을 받는 가정주부들 가운데 누드모델로 나서는 사람이 늘고 있는 것이다. 개중에는 40대 중반 나이든 여성도 들어 있다. 주부들의 옷까지 벗기는 IMF의 위력에 놀라면서도 그만한 '풀몬티 정신' 이라면 IMF위기도 극복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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