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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이 좋아하는 일이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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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회계사가 책상머리서 숫자만 들여다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삼일회계법인 딜(DEAL) 팀은 현장에서 화장품을 팔기도 하고, 빌딩을 관리하기도 한다. 이들은 고객사가 원하면 회계감사라는 본연의 업무뿐 아니라 영업, 마케팅 업무도 마다하지 않는다. 사내에서 이들은 튀는 존재. 외인구단으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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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스킨 화장품의 경영기획을 맡고 있는 손지원 회계사(32).

#“손님, 이런 상품은 어떠세요?”

삼일회계법인 딜(DEAL) 팀의 끝없는 도전 … 기획부터 영업까지 전방위 활동 #삼일회계법인의 외인구단

삼일회계법인의 김혜일 회계사는 요즘 일주일에 한두 번 부산행 KTX에 몸을 싣는다. 부산에 도착하면 신세계센텀시티를 찾는다. 쇼핑을 위해서가 아니다. 김 회계사는 이곳에 입점한 화장품 매장 스킨랩플러스에 ‘출근 도장’을 찍고선 직접 화장품을 판다. 백화점 사람들과 의견을 나눈다.

그는 회계사가 화장품을 파는 게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라며 “고객사인 한스킨화장품의 일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스킨랩플러스는 미국에서 출발한 화장품 편집매장으로, 국내에선 한스킨이 운영한다. 그를 비롯해 모두 10여 명의 삼일회계법인 회계사가 한스킨의 기획·인사·영업 업무를 맡고 있다.

# 지난해 7월 국내 최대 자전거 제조사에서 분사된 고급자전거 제조업체인 첼로스포츠는 참좋은여행을 인수했다. 현재 참좋은레저라는 이름으로 하나가 된 두 회사는 서울 논현동 사무실 1, 2층을 나눠 쓰며 스포츠와 여행사의 결합에 따른 시너지효과를 노리고 있다. 기업가치는 이전보다 5배 증가했다. 사업을 전개하는 데 운신의 폭도 커졌다.

참좋은레저는 최근 자전거 테마주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참좋은레저가 삼일회계법인의 작품임을 아는 이는 드물다. 참좋은여행을 인수하는 작업을 기획·추진한 담당자인 오창걸 상무는 “중견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 필요한 아이디어를 제공했고 고객사도 만족하고 있다”고 말했다.

# 서울 역삼동에 자리잡은 교정전문치과병원인 스타28치과의 주보훈 원장은 지난해 삼일회계법인의 유상수(45) 상무와 함께 1박 2일간 짧은 여행을 다녀왔다. 두 사람은 향후 교정전문 병원 네트워크를 만들어나가는 방안을 함께 궁리했다. 스타28치과는 지난해 미국서 도입된 첨단 투명 교정장치 전문센터로 입소문이 나면서 채 1년도 안 돼 1500명의 고객을 모았다.

주 원장은 “병원 컨설팅을 해주는 곳이 여럿 있지만 삼일회계법인과 이야기를 하는 것은 단순히 성공적인 병원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기업형 병원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국내 최대 회계법인인 삼일회계법인에는 특별한 팀이 있다. 정식명 딜(DEAL) 팀, 통칭 중소·중견기업팀, 벤처팀인 이 팀은 삼일회계법인에서 외인구단으로 통한다. 앞에 소개한 두 사례는 이 팀 이야기. 딜 팀은 국내 회계법인을 통틀어서도 별난 조직이다. 회계법인의 업무가 회계감사 외에 조세·투자·구조조정 자문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지만, 중소·중견기업에 특화해 컨설팅해주는 부서는 드물다.

이 팀의 회계사들은 화장품을 팔기도 하며 건물 관리, 병원 컨설팅도 한다. 앞에 소개한 세 사례는 모두 이 팀의 이야기다. 이들은 본연의 업무인 회계감사만 하지 않는다. 회계감사보다 많은 시간을 컨설팅 업무에 쏟는다. 회계감사가 1이라면 컨설팅 업무의 비중은 9다. 회계사 60명으로 이뤄진 이 팀은 평균 연령 32세로 삼일회계법인에서 가장 젊은 축에 속한다.

중소·중견기업을 위한 만능 회계사

회계사들은 대부분 소매를 걷어붙이고 경영 현장에서 뛴다. 고객사 한 곳당 평균 회계사 3~4명이 투입된다. 재무적인 부문뿐 아니라 마케팅, 영업, 인사 등 다양한 영역을 돕는다. 좀 더 깊이 관여하게 되면 직접 영업, 마케팅 업무를 보는 경우도 있다. 고객사도 다양하다. 역사가 오래된 중견기업서부터, 고속 성장하는 신생 회사, 레스토랑, 병원 등 영역을 가리지 않는다.

이 팀은 외환위기 때인 1998년에 발족됐다. 팀의 창립 멤버인 유상수 상무는 “경영이 어려운 기업을 컨설팅하고 M&A 업무를 주간하기 위해 팀이 생겼다”고 설명했다. 유 상무는 대기업이 아닌 중소·중견기업을 고객으로 잡은 것에 대해 “규모가 작을수록 단순 회계감사 외에 경영자문을 절실하게 원한다”고 설명했다.

“회계사가 아닌 CEO의 시각으로 바라보고 생각하려고 노력합니다.”

유상수 상무는 1992년 삼일에 입사해 대다수 회계사가 안정적인 대기업 관련 업무에 관심을 가질 때 중소벤처팀을 만들어 중소·중견기업에 대한 포괄적인 자문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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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좋은레저의 컨설팅 업무를 맡고 있는 오창걸 상무(43).

회계법인은 2004년 이후 한 회사에 회계감사 및 회계와 관련한 컨설팅을 동시에 제공하지 못하게 됐다. 컨설팅 고객사의 회계자료를 깐깐하게 따지지 못한다는 한계를 없애기 위해 그렇게 제도를 고쳤다. 딜 팀은 한스킨의 회계작성 업무도 도와준다. 그래서 한스킨은 삼일이 아닌 다른 회계법인에 회계감사를 맡긴다.

팀은 10년이 지나면서 팀원이 3명에서 60명으로 성장했다. 고객도 서너 곳에 불과했던 것이 200곳을 넘었다. 빠르진 않지만 내실 있는 성장이다. 이 팀의 신조는 ‘고객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고객이 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큰 고객을 만들어 가자는 생각이다. 10년 전 NHN과의 인연도 이런 신조를 바탕으로 시작됐다.

이 팀에서 첫발을 내디딘 NHN의 회계감사와 컨설팅을 담당할 당시만 해도 누구도 NHN이 시가총액 9조원의 거물로 성장하리라 예상치 못했다. 당시 NHN을 담당했던 유 상무는 “같이 회사를 키우는 마음으로 참여해 보람을 느낀다”고 들려줬다. NHN은 그 후로도 삼일회계법인의 고객으로 남았다. NHN이 지금보다 훨씬 작았을 때 맺어 둔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이 팀에서 공력을 기울이는 한스킨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볼 수 있다. 한스킨은 지난해 매출 473억원을 올렸다. 이 정도 규모의 회사가 회계사 12명에게서 컨설팅을 받는 것은 좀 과하다는 인상을 준다. 한스킨 관계자는 “우리 회사가 잡티를 가리는 BB크림 열풍으로 급성장하는 바람에 업무체계를 충분히 갖추지 못했다”며 지난해 말 삼일회계법인에 종합 컨설팅을 의뢰한 배경을 설명했다.

한스킨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손지원 회계사는 “이 회사는 매출이 매년 100% 성장할 정도로 규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며 “좀 더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서는 삼일회계법인의 노하우가 필요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한스킨은 올 들어 4월까지 매출이 350억원을 넘어 올해 충분히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스킨이 성장함에 따라 삼일회계법인의 수입도 늘어날 전망이다. 한스킨이 일정 규모 이상으로 성장하면 다른 팀으로 가게 될 것이다. 삼일 입장에서 보면 고객을 키워 더 큰 수익을 얻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만들어낸 것이다. 한마디로 다 자란 고객이 아닌, 될성부른 고객에 먼저 다가서는 전략이다.

이 팀의 매출액은 100억여원으로 ‘사’자 붙은 60명의 매출로는 적게 볼 수도 있는 규모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투자 개념으로 서비스를 하다 보니 생긴 결과다. 회사 규모가 아직 작을 경우엔 당장 돈을 받기보다 먼저 신뢰를 쌓는 쪽을 택한다. 앞서 소개된 스타28치과도 아직 컨설팅 보수가 오고가는 관계는 아니다.

대금이 현금이 아닌 현물로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 한번은 어느 중견기업에서 컨설팅 보수로 건물을 받았다. 현금흐름이 원활치 않은 중소기업이 건물로 컨설팅 보수를 대신 치르면 어떨지 제안했다. 삼일 측에서는 자산관리를 잘만 한다면 부동산 가치를 더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현재 이 팀에서는 그 빌딩 입주사를 관리하는 동시에 건물 2층은 직접 매장을 오픈해 운영할 계획도 갖고 있다.

빌딩을 팔아볼까도 했지만 부동산 시장이 여의치 않았다. 대신 임대 수입을 통해 매달 수익을 얻고, 경기가 회복되고 자산가치가 올라갔을 때 빌딩을 팔기로 했다. 그뿐만 아니다. 이 팀에서는 적절한 사업체가 있으면 직접 인수해 수익원을 다양화하는 데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엔 헬스클럽, 철갑상어 양식장에 도전했다. 철갑상어가 수태되지 않아 팀원이 양식장으로 총동원된 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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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28치과의 로드맵을 그리고 있는 김동명 회계사(30).

주말에 철갑상어 양식장으로 불려나간다든지 지방으로 외근이 잦으면 팀원들의 불만이 많을 듯하다. “그런 경우는 거의 없다.” 이 팀 소속 김현수(33) 회계사는 손사래를 친다. 그 또한 신입시절부터 이 팀에 합류했다.

“우리 팀에 들어오면 성격도 바뀌는 것 같습니다. 처음에는 숫기가 없고 수동적으로 업무를 하던 사람들도 적극적으로 변하게 됩니다. 고객사를 응대하다 보면, 적극적이 되지 않아서는 안 됩니다. 고객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업무가 바쁘지 않을 때면 사무실에 있기보다는 밖으로 나가서 세상을 보고 한 사람이라도 더 만나보려고 합니다.”

팀워크로 사내 마라톤 경기 1등

혹 팀원이 밖으로 도는 탓에 팀워크가 약하진 않을까? 삼일회계법인의 26개 팀은 강력한 책임과 자율하에서 운영되기 때문에 팀 실적이 상여에도 영향을 미친다. 기본적으로 팀 중심으로 업무가 진행되기 때문에 팀워크가 가장 강조되는 덕목이기도 하다. 이 팀의 자랑 중 하나는 팀이 사내 축구시합이 열리면 꼭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이다.

최근 마라톤 대회에서 1등을 하기도 했다. “최연소가 아니라 최강 팀워크 덕분”이라는 게 이 팀이 강조하는 우승의 변이다. 최근 가장 고무적인 일은 신입사원이 이 팀에 지망하는 일이 늘고 있고, 취업희망자들도 팀에 관심을 갖고 입사를 희망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유 상무는 “적극적인 팀 문화가 회계사에게도 매력적으로 여겨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공채로 들어온 신입사원 중에서 몇몇을 골랐으나 이제는 먼저 지원하는 쪽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회사의 류승우 부대표는 “딜 팀은 항상 변화와 혁신을 추구하며 회사 전체적으로도 블루오션을 개척하는 데 앞장서는 팀”이라고 평가했다. 삼일회계법인은 다음달 팀을 통폐합한다. 딜 팀은 그대로 갈 예정이다.

임성은 기자 lseco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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