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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북한 '핵장난' 주시해야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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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인도 핵실험이 북한에 잘못된 메시지를 보내지 않도록 함께 협력합시다. " 지난 22일 박정수 (朴定洙) 외교통상부 장관은 하시모토 류타로 (橋本龍太郎) 일본 총리를 예방한 자리에서 이같은 제의를 받았다.

朴장관도 전적인 공감을 표시했다. 하시모토 총리는 한.일간에 여러 현안이 쌓여있는데도 30분동안의 첫 만남에서 절반을 핵확산 문제에 쏟아부었다.

인도 핵실험이 북한으로 불똥이 튈 것을 우려하는 일본정부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정부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인도 핵실험 늑장 보고를 문제삼은 것은 북한에 대한 파장을 고려했기 때문일 것이다. 사실 북한에는 최근 심상찮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영변 원자로의 핵연료봉 봉인작업이 4월 중순부터 중단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 당국은 근로자를 현장에 보내지 않고 미국 기술자에게 추방 경고를 했다고 외신은 전한다.

봉인작업은 지난 94년 북.미 제네바 핵합의에 따른 핵개발 동결의 핵심이다.

북한의 작업 지연은 핵합의가 당초 계획대로 이뤄지지 않을 조짐 때문으로 풀이되고 있다. 1년에 50만t의 중유를 북한에 공급키로 한 미국이 난색을 표하고 있고, 경수로 건설도 한국의 경제위기로 공기 (工期)가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북한 내부 강경파 사이에선 '핵합의로 얻은 게 뭐냐' 는 불만이 터져나올 만도 하다. 이 와중에 인도와 파키스탄이 핵실험을 실시했다.

북한이 핵동결 합의를 깰 수 있는 명분과 분위기가 마련됐다고 판단할 수도 있는 상황인 셈이다. 더군다나 북한은 핵동결 합의전에 원자탄 1~2개 제조 분량의 플루토늄을 추출하고, 핵실험 전단계인 고성능 폭발실험을 70여차례 실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정거리 1천㎞의 노동1호 미사일이라는 운반수단도 갖추고 있다. 또 지난달초 파키스탄이 시험발사에 성공한 가우리 탄도미사일의 부품을 제공한 대가로 핵실험에 관한 기술을 건네받을 수도 있다.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93년 3월 핵확산금지조약 (NPT) 을 탈퇴해 핵독점 체제에 첫 반기를 든 곳이 북한이었고, 당시 북한은 이를 '김정일 (金正日) 최고사령관의 결단' 이라고 선전한 점을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의 핵실험은 강건너 불이 아닌 우리 문제다.

오영환 국제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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