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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포럼]검찰총장 탄핵소추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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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김태정 (金泰政) 검찰총장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한나라당에 의해 국회에 제출됐다. 金총장이 ^두 여당의 연합공천에 대한 수사를 포기해 불공정 선거운동을 조장했고^이신행 (李信行) 의원의 혐의사실을 유포했으며^갑자기 지역감정 조장 발언을 엄단토록 지시한 것은 공포분위기 조성 등 검찰의 선거개입이라는 이유다.

새 정부 출범 직후인 3월에도 이회창 (李會昌) 한나라당 명예총재에 대한 비난발언을 이유로 국회 법사위가 검찰총장의 국회출석을 요구하는 의결을 한 적이 있어 金총장으로서는 벌써 두번째 시련인 셈이다. 검찰총장 탄핵소추안도 처음은 아니다.

94년 12월 임시국회에서 당시 김도언 (金道彦)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이 부결된 적이 있다.

12.12사건 등 관련자에 대한 불기소결정 직후였다.

헌법상 탄핵대상에는 검사 (檢事)가 특정돼 있지 않기 때문에 탄핵소추가 가능한가를 놓고 당시 논란이 일었으나 국회가 표결처리함으로써 검찰총장도 탄핵대상이 된다는 전례를 만들었던 것이다.

검찰총장은 국가 공권력의 상징이다. 엄정한 법집행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준사법기관의 얼굴이다.

정치권과는 초연해야 하고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되는 것이 당연한 검.경찰의 총지휘자다. 국민들에게 지나치게 친근감을 줘서도 안되고 그렇다고 위엄만 강조해도 안되기 때문에 처신과 표정관리가 어려운 자리다.

이를 위해 임기 (2년) 를 법으로 보장해 놓았고 국회 출석도 안하는 것을 관례로 삼고 있다. 이런 검찰총장이 탄핵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는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참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러나 검찰총장 탄핵소추안이 국회에 제출됐는데도 신문.방송마다 거의 기사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아마도 탄핵추진이 선거를 앞둔 정치적 공세에 불과하다고 판단됐기 때문일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들이 공감할 만큼 탄핵소추의 명분이 뚜렷하지 않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보인다.

야당으로서는 여러가지 효과를 노렸을지 모르지만 검찰총장마저 정치공세의 대상으로 삼으려 한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검찰도 반성할 부분이 있다는 점을 부인해선 안된다.

지나치게 정치적이거나 시류에 영합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특히 여야의 이해가 엇갈린 사건일수록 더욱 그랬다.

환란 (換亂) 수사만 해도 감사원이 제시한 '강경식 (姜慶植).김인호 (金仁浩) 형사처벌' 이라는 답안에 맞추기 급급해 외환위기의 원인규명에는 실패했다는 지적이 제기됐었다. 특히 수사과정에서 검찰이 노골적으로 임창열 (林昌烈) 전부총리를 감싸며 면죄부를 주려고 노력한다는 인상을 남겼고 참고인의 자살기도, 폭언.폭행 등 강압수사 말썽도 흠이었다.

북풍 (北風) 사건 수사결과는 보통 구속 또는 공소제기 시점에 발표하는 관례를 벗어나 주인공격인 권영해 (權寧海) 전안기부장 구속 50일만에야 발표됐다. 그것도 지방선거 후보등록 마감 직후에 "대선때 權안기부장이 안기부 직원을 이회창후보 선거운동에 동원했다" 는 내용을 밝혔으니 야당의 반발을 살 만도 하지 않은가.

이신행의원 사건처리는 혐의사실을 언론에 흘려 피의사실 공표라고 반격할 빌미를 주었다. 검찰 주장대로 단순한 개인비리라면 영장집행을 미룰 이유가 없지 않은가.

급박하게 체포영장을 발부받은데 비해 집행을 미루며 좌고우면 (左顧右眄) 하는 모습을 보여 공권력의 표류, 또는 정치적 판단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또 선거철 지역감정 해소에 검찰이 칼을 빼든 것도 성급했다는 얘기를 듣기 십상이다. 적용법규가 마땅치 않고 비방이나 흑색선전.명예훼손이라고 보기도 어려워 형사처벌은 무리라는 게 법조계의 지배적 의견이다.

엄포의 효과를 노렸는지 모르지만 명분이나 목적이 좋다고 법운용이 고무줄처럼 보여서는 곤란한 일이다.

검찰은 한결같이 모두가 정당한 업무집행이었다고 억울해 한다. 그러나 옛말에 '선비는 오얏나무 아래서 갓끈을 고쳐매지 않는다' 고 하지 않았던가.

검찰권 독립이나 권위.존엄성은 스스로 확립하는 길밖에 없다는 게 검찰사 (檢察史) 의 교훈이다.

김대중 (金大中) 대통령은 '국민과의 대화' 시간에 "과거 정당성없는 정부들이 국민 위에 군림하기 위한 통치기구로 악용하던 검경 (檢警) 조직의 독립성을 보장하고 있다" 는 점을 새 정부의 치적으로 강조했다. 검찰로서는 좋은 기회를 맞은 셈이다.

고통스럽고 답답한 시기에 검찰이라도 제몫을 다해 국민 마음을 든든하고 시원하게 해주기를 기대한다.

권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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