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실업대책 허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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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정부의 실업대책이 겉돌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최근의 한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절반 이상이 실업대책의 효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정부의 실업대책은 크게 네가지다.

공공투자 확대를 통한 일자리 만들기, 취업알선과 직업훈련 확대, 실업자 생활안정 지원, 벤처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등이다.

이를 위해 책정한 재원은 7조9천억원. 문제는 대책의 실효성이다. 지원규모가 적정하냐는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책정된 자금도 제대로 지원되지 않고 있다.

실직자 생활안정용 생계자금 대부 사업이 좋은 예. 대출 시작 후 한달이 지난 23일 현재 4천9백59명이 5백13억원의 대출을 신청했지만 대출이 이뤄진 것은 신청액의 20%선인 1백12억원이 고작이다. 실직자 상호간의 맞보증 허용 등 대출조건 완화 조치를 내놓고 있지만 일선은행 창구에까지 약효가 먹혀들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일자리 마련을 위해 짜낸 공공근로사업 역시 부처간의 정책혼선과 현실성 없는 보수 등의 이유로 70%를 맴도는 저조한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벤처기업 창업지원과 외국인 근로자의 내국인력 대체기업 지원사업에도 7천억원을 투입할 예정이지만 실적은 극히 미미하다.

지난달 22일부터 접수하기 시작한 벤처기업 창업 및 전환 지원은 한달이 지난 22일 현재 3백25건이 접수됐지만 지원이 결정된 것은 28건 (44억원)에 불과하다. 외국인력 대체고용지원 역시 내국인 근로자를 구하기 어려운 3D업종의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탓에 신청 건수가 21건 (60여명)에 불과한 형편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재원마련 문제다. 현재의 대량실업 사태가 장기적이고 구조적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고용보험기금의 고갈이 우려되는데다 고용안정채권의 판매는 극히 부진해 재원조달에 차질이 우려되고 있다.

다음달까지 3개월간 한시적으로 발행되는 고용안정채권은 판매 개시 두달이 돼가는 23일 현재 목표액의 10%에도 못미치는 1천2백97억원어치가 팔렸을 뿐이다. 이처럼 재원 마련조차 불투명한 상황 속에서 정부의 실업대책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 식의 실직자 구제차원을 벗어나 장기적인 실업 예방차원으로 전환돼야 한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구조조정의 가속화를 통한 경쟁력 회복과 새로운 일자리 창출, 이에 따른 장기적 고용안정 등 노동시장 기반 안정에 무게중심이 옮겨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훈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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