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비비 인도네시아 어디로 가나]하.경제 또다른 뇌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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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하비비 정권은 급속히 자신감을 되찾고 있다.처음에 허둥대던 모습은 사라졌다. 과도정권임은 분명하지만 나름대로 분명한 역할을 할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 " 저명한 정치평론가인 아르비 사비트의 정국 진단이다.

재야운동가인 모하마리아대의 모흐도르 (52) 교수는 24일 중앙일보와의 전화통화를 통해 "하비비 정권은 분명 오래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구체제 수호라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힘은 갖추고 있다" 고 전망했다.

중앙일보와 꾸준히 접촉해온 한 재야운동가는 "지금은 조정국면" 이라고 전했다. 한바탕 격전을 치르고 난 뒤 이제는 재야세력과 정부가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면서 탐색전을 펼치고 있는 중이라는 얘기다. 가까운 시일안에 큰 정국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도 된다. 그렇다고 인도네시아 위기가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새로운 위기가 국민내부에서부터 뿜어질 기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먹고 사는 문제 때문이다. 우선 그간의 폭동과 시위로 인도네시아 전국의 유통망이 완전히 마비된 상태다.

돈이 있어도 사먹을 음식이 없다는 얘기다.인도네시아는 열대지방이기 때문에 집에 많은 음식을 비축할 수 없다.

게다가 인도네시아는 기본적으로 '매식 (買食) 문화' 가 발달해 음식점이 문을 닫으면 당장 곤란을 받는다.

그런데 이런 어려움이 벌써 2주째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엄청난 숫자의 실업자가 발생하면서 사태는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공식 실업자수는 2천5백만명이지만 실제는 5천만명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전체 인구가 2억명임을 감안할 때 사실상 성인남자 둘중의 하나는 놀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이들은 곧바로 엄청난 사회적 불안요소가 된다.

자카르타 포스트지의 빈센트 링가 편집국장대리는 "실업은 비단 하층계급의 문제만이 아니다. 일반직장인들도 급격히 무너지고 있다. 제대로 돌아가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나아질 기미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경제가 너무 절망적이다.

이렇게 나가다간 모라토리엄 (지불유예) 은 시간문제다" 고 한탄했다.

수하르토의 사임으로 어렵게 되찾은 진정국면이 사막 위의 모래성이라면 "배고파 못 살겠다" 는 국민들의 외침은 이 모래성을 한순간에 날려버릴 거대한 모래바람인 셈이다.

자카르타 = 진세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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