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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아사히 사진 오보 ‘김정운 얼굴 맞다’ 김정남이 확인해 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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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호 03면

1·2 이스라엘 신문 예디엇 하로놋의 9일자 기사.<1. ‘미래 독재자와의 어린 시절 추억’이란 제목 옆으로 학우들과 졸업 기념 사진을 찍은 ‘박철’(동그라미 안)의 모습이 보인다. 박철은 김 위원장의 2남 정철이다. 2는 같은 반이었던 이스라엘 여성 카렌 라프 클린과 박철의 독사진> 3은 TV 아사히가 후계자 지명설이 나오는 김정운으로 오보한 한국인 배모씨 사진.

북한이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후계자로 김 위원장의 3남 정운(25)을 확정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국내외 정보·언론 시장에 한바탕 ‘정운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장남인 정남(38)과 차남 정철(28)에 비해 정운에 대한 정보가 거의 없는 데다 북한의 핵실험 등 잇따른 도발과 후계 구도의 불안정성이 맞물려 관심이 증폭되면서 생긴 과열 현상이다. CNN과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IHT) 등 주요 언론이 ‘세계에서 가장 예측 불가능하고 폐쇄적인 정권’의 권력 승계 게임을 주요 기사로 다루는 가운데 황당한 오보 사건도 잇따르고 있다. 멀쩡한 남한의 40대 남성이 정운의 현재 모습으로 소개되기도 했다.

‘김정운 사진 찾아라’ 세계는 정보전쟁 중

12일(현지시간)에도 미국의 폭스 뉴스는 미 정보 당국이 북한의 내부 교신과 문건을 입수해 정운의 후계 지명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이 방송은 북한의 해외 공관에서 정운에게 충성서약을 한 전문, 군부가 북한 군대와 주요 군사기관 내부에 내린 ‘6대 말씀요지’도 정보 당국이 입수했다고 전했다. 말씀 요지에는 ‘김정운은 군사적으로 천재이며, 장군님(김정일)의 후계자라고 치켜세우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정운은 김 위원장의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가 공개한 11세 때의 사진이 유일할 정도로 여전히 ‘숨겨진 왕자’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요리사였던 일본인 후지모토 겐지씨가 공개한 정운의 11세 때 사진이다.

CNN, IHT 후계기사 집중 보도
일본 민영방송 TV 아사히는 연일 ‘특종’을 했다. 9일 마카오의 한 공원에서 장남 김정남을 인터뷰했다. 정남은 “(정운 후계자설은) 미디어를 통해 들었는데, 맞다고 생각한다. 그 문제는 내 아버지가 결정할 일이고 그가 결정하면 우리는 그를 서포트해야 한다”고 했다. 하루 뒤엔 정운의 새로운 사진을 단독 입수했다고 보도했다. 며칠 전 정남을 먼저 인터뷰한 일본의 니혼TV를 한 방 먹인 셈이다. 그러나 몇 시간 뒤 상황은 역전됐다. 김 위원장을 닮은 남한의 ‘보통 사람’ 배모씨가 인터넷 블로그에 올려놓은 사진을 특종으로 보도한 것이다.

TV 아사히의 오보 사건은 이후 증폭됐다. 오보에 대해 시청자들에게 사과하면서 사진의 입수 경위를 ‘한국 당국 관계자’로부터 받았다고 한 것. 즉각 주일 한국대사관은 ‘한국 정부의 신뢰를 떨어뜨린 근거 없는 얘기’라며 방송사 측에 항의하는 소동까지 빚어졌다. TV아사히는 다시 “한국 국내의 신뢰할 수 있는 인물로부터 입수했으며, 북한 관계자들에게 자문한 결과 사진 속 인물이 정운일 확률이 90%라고 사진을 내보냈지만 사진이 맞다고 확인해 준 북한 관계자들도 잘못 판단한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번에는 자문한 북한 관계자가 누구일까에 관심이 쏠렸다. TV아사히는 함구했다. 소식통은 “사진을 방송사에 건넨 사람은 일본 언론의 과열경쟁을 잘 아는 브로커가 금품을 챙기기 위해 제공한 것으로 보이지만, TV아사히가 자문한 북한 관계자는 김정남인 것으로 파악됐다”고 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아사히 측은 9일 김정남과 인터뷰하면서 그 전에 확보한 사진을 보여 주면서 ‘당신의 동생이 맞느냐’고 확인했고, 정남은 힐끗 보면서 ‘맞다’고 했다는 것이다. 정남이 확인한 사진이 바로 배모씨 얼굴이었다.

정남은 9일 인터뷰에서 “정운은 아버지를 많이 닮았다. 그 점이 아버지가 후계로 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라고 했다. 배모씨의 얼굴은 김 위원장과 흡사하다. 정운이 외모 면에서도 정일을 닮았다는 설은 많았다. 따라서 정남이 배씨 사진을 보고 헷갈렸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오보는 정보기관 ‘모사드’로 유명한 정보 강국 이스라엘에서도 있었다. 9일 이스라엘에서 히브리어로 발행되는 최대 일간지 예디엇 하로놋(Yediot Aharonot)지는 ‘정운’의 클래스메이트였다는 한 여성을 인터뷰했다. 또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정운’의 사진들도 실었다.

기사 제목은 ‘미래 독재자와의 어린 시절 추억’. 주 이스라엘 한국 대사관도 이 기사를 본 즉시 스크랩해 외교 전문으로 보냈다. 공관 관계자는 “처음 기사를 봤을 땐 ‘한 건(정운 사진 확보) 하는 건가’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하루 뒤 정부는 이스라엘 친구들이 정운과 정철을 혼동한 것 같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교에서 쓴 가명이 ‘박철’인데 이는 정철이 사용했다는 이름이며, 96년 7학년(13살)이었다는 친구들의 말을 토대로 나이를 계산하면 올해 26세여서 부정확한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정원과 외교부 등은 신문에 나온 3장의 사진 가운데 독사진 1장이 알려진 정철의 모습과 좀 달라 보이지만, 이미지 분석 결과 정철의 사진으로 결론냈다. 외교부 관계자는 “기사가 오보이고 외국 신문의 내용이어서 사진을 아예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최근 ‘정부가 정보 장사를 하고 있다’는 일각의 지적을 고려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예디엇지도 인터넷에서 사진을 내렸다. 9일자를 검색하면 기사도 원 기사와 달리 돼 있다. 현지 관계자를 통해 확보한 신문 내용을 히브리어 권위자인 신성윤(부산 외국어대) 교수의 도움을 받아 일부를 소개한다.기사는 ‘서양에 잘 알려지지 않은 북한의 지도자 아들과 함께한 그들’ ‘아이들은 그를 장난감(toy)’이라고 불렀다’는 소제목으로 시작한다.

이스라엘 女동창 “그 아이 별명은 장난감”
『김정운은 핵을 발사할 수도 있는 북한의 통치자가 될 것이지만, 학창시절 이스라엘 출신 친구들은 그를 사랑스럽고 부끄럼 많이 타는 아이로 기억한다. 15년 전 스위스 베른의 국제학교에서 김정운과 공부한 이스라엘 친구들은 “말이 거의 없었다. 수줍어했지만 절제된 행동을 하는 아이였다”고 했다. 학교에서는 박철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됐으나 모두 그를 북한 통치자의 아들로 알고 있었다. 한 나라 지도자 아들이 함께 공부한다는 게 학생들에겐 큰 인상을 주지 못했는데, 왜냐하면 그곳에는 많은 유명한 지도자, 왕족, 백만장자의 아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같은 시기에 5명의 이스라엘 학생이 그곳에서 공부했다. 그중 베른 주재 이스라엘 대사관 직원의 아들이 정운의 농구선생 노릇을 했다. 남자 아이들은 그가 농구에 푹 빠져 있었다고 기억했다. 대사관 행정직원의 딸 카렌 라프 클린은 “정운이 매일 학교에 관용차로 등교했다”고 말했다. 정운은 96년 당시 7학년생이었고 아이들 사이의 애칭은 ‘장난감(toy)’이었다. 유럽에서 온 친구들도 그를 독재자의 아들로 기억한다.

공부를 마친 김정운은 다시 북한으로 돌아갔다. 그에 대한 정보는 별로 없다. 학교 친구들도 갖고 있는 사진이 아주 드물다. 케렌은 “한 작은 소년이 북한의 통치자가 된다는 게 흥미롭다”며 “여러 나라에서 온 아이들과 지냈던 사실이 아마도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생각한다. 같이 공부한 친구들도 그를 좋게 기억하고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김정남은 ‘김평일의 길’ 갈 수도
정운이 정철의 뒤를 이어 베른의 국제학교를 다닌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까지 정운과 함께 학교를 다녔다는 클래스메이트들의 주장은 없다. 94년 중반부터 3년간 스위스 제네바에서 근무한 한 외교관은 “당시 김 위원장의 아들이 베른 국제학교에 다닌다고 알고 있었고, 사진을 찍기 위해 무작정 베른까지 갔던 기억이 있다”며 “그러나 두 아들이 다닌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고 했다. IHT도 11일 정운의 스위스 유학설에 대해선 전문가들 사이에 의견이 갈린다고 보도했다.

정운의 후계자 지명설을 현재까지 가장 공신력 있게 확인해 준 사람은 인터뷰를 한 정남이다. 그는 그간 여러 차례 일본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의 상황을 마치 남의 나라 얘기하듯 해왔다. 지난해 김정일 위원장의 건강문제가 불거진 뒤 귀국해 1월 다시 마카오로 돌아올 때까지 ‘정남 후계설’이 사라지진 않았었다. 최근 “나는 정치 문제에 전혀 관심도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나를 숙청하지 말라”는 호소의 메시지로도 읽히는 대목이다. 2001년 도미니크 여권을 위조해 일본으로 입국하다 공항에서 체포된 뒤 아버지의 눈 밖에 난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정남과 김위원장의 부자 간 정은 유지되고 있다고 한다.

고위 소식통은 “김 위원장이 생존하는 한 북한의 누구도 맏아들 정남을 건드릴 수는 없을 것”이라며 “정남은 마카오나 베이징에 체류할 때도 아버지와 전화통화를 하고 e-메일도 주고받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더라도 동생 정운의 후계가 확실해짐과 함께 정남은 숙부 김평일(55) 주 폴란드 대사처럼 ‘실질적 망명’ 신세에 들어가는 과정에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 위원장의 이복동생인 김 대사는 권력투쟁에서 밀려난 뒤 28년째 해외 생활을 하고 있다. 수령 절대주의인 북한에서 ‘곁가지’의 건재는 허용하지 않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김평일 대사가 대사관을 나오면 뒤로 두 대의 차량이 따른다. 하나는 김 대사의 차를 감시하는 차, 맨 뒤 차는 그 차를 감시하는 차량”이라고 했다. 자유인 정남 역시 같은 처지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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