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뭍으로 길 … 섬 소년 꿈을 잇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김수홍 ㈜인천대교 대표가 마무리 공사가 한창인 인천대교 앞에 서 있다. 국내에서 가장 긴 해상 교량인 인천대교는 10월 23일 개통한다. [㈜인천대교 제공]

11일 낮 인천 송도국제도시 북단의 인천대교 건설 현장. 거대 해상 교량이 용틀임하는 듯한 위용을 뽐내며 서해 저편으로 끝 간데없이 뻗어 있었다. 인천대교는 4년여의 공사 끝에 10월 23일 개통돼 송도와 영종도의 인천국제공항 간을 20분 이내로 좁혀 놓게 된다. 이날 현장에는 지난 10여 년간 이 사업에 매달려 온 김수홍(50) ㈜인천대교 대표가 마무리 공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40여 년 묻어둔 꿈 이루려 캐나다로

“고비도 많았지만 마침내 어릴 적 꿈을 이루게 돼 매우 기쁩니다.” 영국의 엔지니어링 업체 에이멕의 한국법인 대표이기도 한 김 대표의 어릴 적 꿈은 고향 섬에 뭍으로 나가는 큰 다리를 놓는 것이었다. 그는 250여 년 전에 조상들이 삶의 터전을 영종도로 옮긴 집안의 ‘섬개구리’ 출신이다.

‘큰 다리 건설’의 꿈은 부친의 영향도 컸다. 부친 김종식(91)씨는 일본 와세다대를 나와 판문점 ‘자유의 집’과 국내 최초의 마포아파트를 설계한 건축가다.

그 꿈은 그러나 이후 40여 년간은 잊혀져 있었다. 부친의 사업 실패로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19세 때부터 줄곧 사업에 매달려 왔기 때문이다. 1980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해 고학으로 캘리포니아주립대에서 미술을 공부했으나 끝마치지는 못했다.

80년대 후반 귀국한 뒤 캐나다산 사무용 가구 수입 사업을 벌여 큰돈을 벌기도 했다. 그러나 90년대 말 외환위기로 달러 환율이 1900원대로 치솟으면서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몰렸다. 수입대금을 막지 않으면 부도로 내몰리게 됐던 98년 1월의 어느 날, 거짓말처럼 그날만 환율이 1400원대로 떨어져 위기를 모면했다. 구사일생한 그는 곧바로 사업을 정리하고 캐나다로 날아갔다. “개인적인 돈벌이에만 매달릴 때가 아니라는 막연한 생각에서였다”고 한다. 캐나다의 사업 파트너를 찾아 무턱대고 “한국에 외자 유치를 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했다. 파트너는 “도대체 어떤 사업이냐”고 되물어 왔다.

영국기업 설득 … 은행 투자도 유치

영종도 국제공항 공사가 한창이던 시절이라 순간 어릴 적 꿈이 떠올랐다. “해상 교량을 건설하려 한다”고 말했다. 마침 한·캐나다 양국 간에는 한국의 외환위기를 해소하기 위한 협력이 현안이 돼 있었다. 99년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캐나다를 방문하면서 인천대교는 구상 단계에서 구체적 투자 아이템으로 격상됐다.

인천대교 투자는 캐나다 엔지니어링업체인 아그라에서 검토가 시작돼 이 회사를 합병한 영국 에이멕에서 최종 결정됐다. 시공과 시행을 완전히 분리하고 은행의 대출이 아닌 투자를 밑천으로 추진한다는 그의 사업 계획이 까다로운 영국 기업을 설득해 냈다.

그는 “인천대교를 단순히 토목 공사가 아닌 국제금융 투자사업으로 접근한 것이 평가받았다”고 말했다.

인천대교는 사회간접자본(SOC)의 민간투자에 투명성을 접목시켰다. 교통 수요 예측을 부풀려 사업을 시작하고 운영은 재정 지원에 의존하는 기존의 민자사업 틀에서 벗어났다. 대형 건설사가 시행자인 동시에 공사까지 도맡는 구도를 버리고 공사를 국제 입찰에 부쳤다. 시공은 삼성건설 컨소시엄이 맡게 됐다. 민자사업으로는 처음으로 은행이 대출이 아닌 투자자로 참여했다. 이 같은 성과를 바탕으로 그는 ‘최고 프로젝트 파이낸싱’(유로머니) 등에 선정됐으며, 인천대교는 ‘경이로운 세계 10대 프로젝트’(컨스트럭션 뉴스)로 뽑혔다.

“고향을 국제도시로” 무료 통행 추진

인천대교는 민자사업이면서도 통행료를 안 받는 새로운 도전에 나서고 있다. 영종도 미개발지에 도시 브랜드만으로도 몇 배의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신개념의 국제도시를 개발해 그 이익으로 통행료를 없애겠다는 것이다.

개발권과 통행료 무료를 맞바꾸는 방식이 아니다. 독립된 자산관리 회사를 두고 개발 이익과 통행료 인하를 연계시키는 프로그램을 도입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통행료를 안 받으면 사람과 차량의 내왕이 늘어나 영종도와 송도의 자산가치가 그만큼 올라가기 때문에 충분히 가능하다”고 말했다.

인천=정기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