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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 살인마' 검거] 증거 안 남기려 성관계도 피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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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유영철씨의 범행과정은 용의주도하고 치밀했다. 그는 자신의 IQ가 140이 넘는다고 주장하면서 완전범죄에 대한 병적인 집착을 보이기도 했다.

이번 사건의 수사를 맡은 경찰 관계자는 "사람을 죽이러 가서는 수천만원의 돈이 있어도 전혀 손을 대지 않았고, 돈이 필요할 때는 경찰관을 사칭해 돈을 갈취하는 등 지능적으로 범행을 저질렀다"고 혀를 내둘렀다.

유씨가 부유층 노인과 여성 출장 마사지사들을 살해하는데 사용한 망치는 유씨가 직접 제작한 '작품'이다. 시중에서 유통되는 망치는 세로 길이가 30~40cm로 휴대하기 불편해 유씨는 손에 쥐기 쉽게 자루를 잘라 망치를 16㎝ 길이로 만들었다. 또 칼이나 망치와 함께 장갑을 갖고 다니면서 검찰의 지문추적에 대비하기도 했다. 특히 시체에서 지문을 도려내는 등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주도면밀함을 보였다.

경찰에 따르면 유씨는 지난해 부유층 노인을 잇따라 살해할 때 길가에서 떨어져있거나 정원이 넓어 외부에서 집안 상황을 살필 수 없는 100평 이상의 단독주택을 범행 대상으로 잡았다. 목격자가 나타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다. 또 가족들이 모두 집을 나가고 노인 혼자 집을 지키던 점심시간 때나 오후 시간대에 범행을 저질렀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서 교수부부를 살해했을 때는 범행 현장을 떠나려다 칼을 두고 나온 것을 알고, 체포위험을 무릅쓰고 현장에 다시 들어가는 '과감성'을 보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잠그고 나왔던 방문을 발로 차 부순 점은 경찰 수사 내내 풀리지 않는 의문이었다.

유씨는 "다른 곳에선 발자국을 지우고 나왔는데 신사동 사건 때는 시간이 없어 발자국을 못 지우고 나온 것이 마음에 걸린다"며 "다시 들어갔을 때 문이 열리지 않아 문을 몇번 찼는데 현장 검증을 제대로 했으면 다리털 몇개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경찰을 조롱하기도 했다.

혜화동 김모(87)씨 일가족 살인사건에서도 유씨는 모든 증거를 없애기 위해 일부러 불을 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여성 출장 마사지사 11명을 살해한 뒤 증거를 없애기 위해 시체를 토막 내 서강대 뒷산과 서대문구 봉원사 주변의 야산에 파묻었다. 시신을 옮길 때는 토막낸 시신을 검은 봉지로 5~6겹 싸 냄새가 나지 않게 한 뒤 택시를 이용해 8~9차례 주거지와 암매장 장소를 오가며 시체를 묻었다.

또 신원을 확인하지 못하도록 사망한 피해자의 지문을 흉기를 이용해 도려내기도 했고, 자신의 지문이 남는 것을 염려해 시체를 쌌던 검은 봉지는 모두 회수했다.

경찰 관계자는 "DNA 감식에 걸릴까봐 피해 여성과는 성관계도 하지 않았다"며 "경찰 불심검문에 걸리면 일부러 간질 증세를 일으켜 빠져나가는 간교함도 보였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오피스텔로 이사오기 전 모친과 함께 살던 집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잔혹한 면을 보이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범행 당시 상황을 재구성한 뒤 스스로 문제점을 지적해 경찰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유씨는 지난 4월 인천에서 일어난 월미도 노점상 살해 사건에 대해 자백하면서 "증거를 없애기 위해 피해자의 손목을 잘라 바다에 버렸지만 타고온 차 번호판을 떼지 않아 단서를 남겼다"고 말했다.

손해용.박성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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