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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기업을 살리자…다시 정신력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우리경제의 위기를 극복하려면 무엇보다 기업이 되살아나야 한다. 기업이 잘돼야 일자리를 늘려 최대과제인 실업문제를 치유할 수 있고, 수출을 많이 해 달러를 벌어들여야 빚도 갚을 수 있다.

구조조정으로 어느 때보다 격심한 고통을 받고 있으나 그렇다고 푸념과 하소연만 하고 있을 시간은 없다. 이런 때일수록 심기일전해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내는 불굴의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일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현장취재를 통해 집중점검해본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더군요. " 올 들어 수출을 지난해의 2배로 늘린 쌍용양회 페라이트 (스피커.자동차 모터 등의 재료로 쓰이는 자석) 영업팀의 유승민 (劉承旻.42) 부장. 이 팀은 지난해말 인력구조조정으로 팀원이 17명에서 9명으로 줄었다. 게다가 주요 수출시장이었던 동남아 국가들이 경제위기로 무너지는 외환 (外患) 까지 겪었다.

劉부장은 그러나 좌절하지 않았다. 주력시장을 미국.유럽으로 옮기기로 하고 주한 외국대사관.상공회의소 등이 갖고 있는 바이어 명단, 쌍용의 해외지사와 인터넷 등 가능한 모든 정보를 입수해 팀원들과 함께 뛰었다. 올 1분기 수출실적은 지난해 같은 기간 (32억원) 의 2배인 65억원.

劉부장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는 야근을 마다하지 않고 팀원들이 똘똘 뭉쳤더니 불가능해 보이던 문 (새 바이어 확보) 이 하나 둘씩 열렸다" 며 "하면 된다는 자신감이야말로 위기극복의 원동력" 이라고 말했다.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를 맞아 나라경제가 벼랑에 몰려 있지만 이처럼 '불굴의 기업마인드' 로 위기를 헤쳐가려는 움직임이 산업현장 곳곳에서 새 싹이 트듯 돋아나고 있다.

스테인리스 강판을 만드는 삼미특수강 창원공장은 이달부터 2교대를 3교대로 바꿨다. 하루 16시간 가동에서 24시간 가동체제로 들어간 것이다.

지난해 3월 부도.재산보전처분 결정후 1년여동안의 눈물 젖은 노력끝에 얻어낸 결실이다. 부도가 나자 임직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공장가동조기추진위원회' 를 결성한 것.

자신들의 일터가 자칫 고철덩어리로 전락할 절박한 상황을 맞게 되자 전종업원이 두달치 월급을 반납해 모은 돈으로 원료인 핫코일을 사 재가동에 나섰다.

처음 월 5천t (85억원) 으로 시작했던 생산량이 꼭 1년만인 지난달엔 1만3천2백t (2백52억원) 으로 늘었다. 이달엔 부도전 수준 (월 1만5천t) 을 회복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판매도 처음엔 전량 내수였으나 이젠 (4월기준) 수출 (7천6백t) 이 내수 (5천6백t) 보다 많아졌다.

IMF로 내수시장이 한파를 맞자 수출로 새 활로를 뚫은 결과다. 국내 업계가 대 (對) 중국 수출에 치우쳐 있는 점에 착안, 미국.유럽으로 다변화한다는 전략아래 재산보전관리인 김동윤 (金東潤) 씨까지 직접 뛰고 있다.

그는 미국에 두차례 출장을 다녀온데 이어 이달엔 유럽에 갈 계획이다. 원래 삼미맨인 이봉규 (李鳳圭) 사장은 품질쪽을 맡아 공장이 있는 창원에서 살다시피 한다.

이 회사의 승용차는 관리인차와 사장차 2대뿐이다.

직원들도 상여금 4백%를 반납하고 월차수당.경조비.자녀학자금 등 복리후생비도 모두 포기했으나 의욕만큼은 충만하다.

이기호 (李基鎬.39) 노조위원장은 "소속 회사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를 새록새록 느끼고 있다" 고 말했다. 부도후 경영에서 완전히 손을 뗀 김현배 (金顯培) 전삼미회장은 최근 청와대에 "나는 떠났지만 임직원들은 도와달라" 는 탄원서를 냈다.

항공기.선박의 엔진부품업체인 한국로스트왁스 장세풍 (張世豊.62) 사장. 79년 창업때부터 회사에 침대를 갖다놓았던 그는 올들어선 한달에 한두번 잠깐 집에 들렀다 나올 정도로 회사를 지키고 있다.

IMF체제후 주문감소.납품단가인하.어음만기 장기화 등 동시다발적으로 터져나온 악재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그는 작업용 장갑을 빨아쓰게 하고, 회장실 화장지 사용길이도 제한하며 구내 자판기에선 커피를 없앴다.

전기부품업체인 서오기전 (서울송파구석촌동) 김성수 (金成洙.46) 사장은 매일 오전 3~4시에 출근한다.

퇴근시간은 대략 밤 12시쯤. 직원 20명에 연 매출액 30억원인 이 회사는 컴퓨터 자동화기계 안전장치 기술을 일본에 수출해 매달 3백만원의 로열티까지 받고 있다.

金사장은 "남보다 땀을 더 흘리는 것외엔 방법이 없으며 열심히 하는 한 분명히 대가가 있다" 고 잘라 말한다.

이영렬·양선희 기자

〈young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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