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행 죄인만들기'맞서 30대 '거짓말과의 전쟁'780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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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강간' 이란 파렴치한 죄명을 쓰고 구속됐다 무죄가 인정돼 풀려난 시민이 끈질긴 노력 끝에 자신을 범인으로 몬 경찰관을 법정에 세우게 됐다.

96년 여대생을 성폭행했다는 혐의로 부산 북부경찰서에 의해 구속됐던 정연민 (鄭然珉.39.학원 운영.부산시부산진구개금동) 씨. "누명을 씌운 경관에 대한 개인적인 미움은 없습니다.

하지만 사법기관이 더이상 마음대로 시민의 인권을 유린해선 안되겠다는 생각에 힘겨운 싸움을 시작한 거지요. " 96년 3월7일 북부서 P경장 (현재 사하경찰서 근무) 이 鄭씨의 단과학원에 찾아오면서 鄭씨의 '지옥같은 세월' 은 시작됐다.

P경장은 "鄭씨가 3월6일 0시30분쯤 인근을 지나던 S (당시 21.전문대생) 씨를 학원으로 유인, 성폭행하려다 S씨가 3층에서 뛰어내려 전치 6주의 상처를 입었다" 며 鄭씨를 체포했다.鄭씨는 곧바로 강간치상 혐의로 구속됐다.

사건발생 시간에 鄭씨와 함께 있었던 부인 김명임 (金明任.33) 씨로서는 청천벽력같았다.鄭씨는 "보상금 7백만원에 합의하자" 는 S씨측의 제의를 뿌리치고 무죄를 주장했지만 구속기소됐다.

이때부터 피나는 鄭씨의 법정투쟁이 시작됐다.鄭씨의 처남도 회사를 그만두고 진실을 밝히는데 나섰다. 鄭씨는 같은해 8월6일 부산지법에서 "S씨의 진술에 일관성이 없고 경찰 수사에 문제가 많다" 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인정받아 1백48일동안의 수감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다.

검찰이 항소했지만 부산고법에서 기각됐다.

鄭씨는 재판과정에서 "중상을 입었다는 S씨가 다친지 2일만에 버젓이 밖을 돌아다녔고 당시 119 출동 일지도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가벼운 상처를 입었다고 돼있었다" 고 주장했다.

그는 또 "S씨가 남자친구와 함께 학원에 몰래 들어왔다 밤늦게 귀가했다가 나무라는 부모에게 엉겁결에 성폭행을 피해 달아났다고 거짓말을 했다" 면서 "S씨 아버지와 친분이 있던 P경장도 파출소 진술조서 등을 숨기고 위증을 통해 사건을 조작했다" 고 증언했다.

풀려났지만 鄭씨에게 남은 것은 '상처뿐인 영광' 이었다.

소송비용 등 1억원이 들어 살던 집까지 처분해야 했고 주위의 따가운 시선은 더욱 견딜 수 없었다. 鄭씨는 경찰에서 증거를 은닉.조작한 나름대로의 증거를 확보, 지난해 4월 P경장을 부산지검에 고소했다.

하지만 부산지검은 P경장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고 鄭씨는 즉각 부산고검에 항고했다.

부산고검은 지난 4일 '수사관련 서류가 은폐되고 관련자들이 거짓 증언한 점을 인정해 P경장에 대해 위증죄와 공용서류은닉죄를, S씨에 대해 모해 위증죄를 각각 적용해 부산지검에 공소를 제기하라고 명령했다' 고 鄭씨에게 통보했다.

현재 전세방에서 어린 두자녀.부인과 어렵게 살고 있는 鄭씨는 "지난 26개월동안 겪은 악몽을 두번다시 다른 시민이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 말했다.

◇ 공소제기명령이 내려지면 = 형사소송법.검찰청법에 따라 해당 지검 (부산지검) 의 담당검사는 반드시 공소를 제기해야 한다.

부산 = 정용백 기자 〈chungyb@joongang.co.kr〉

*경관주장은…

P경장은 "鄭씨의 주장은 대부분 사실이 아니다.

鄭씨에 대한 법원의 무죄 결정은 증거불충분 때문이지 범인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다" 고 주장했다.

그는 "사건 당시 정황으로 볼 때 특수키를 가진 학원주인 鄭씨가 아니면 학원 문을 따고 들어갈 수 없었다" 며 "학원이 끝난 뒤 강사들이 문을 잠그고 간 사실도 확인됐다" 고 말했다.

그는 또 "수사과정에서 내가 서류를 은닉.조작했다는 의혹은 앞으로 있을 재판과정에서 드러나게 될 것" 이라며 "절대로 수사기록을 왜곡한 적이 없다" 고 주장했다.

한편 부산고검 관계자는 "담당 경찰관이 위증을 하고 공문서를 은닉한 점을 충분히 인지했기 때문에 공소를 제기하라고 부산지검에 명령한 것" 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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