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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외국 투자가들, 노조 과격 시위 두려워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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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21년간의 한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하는 태미 오버비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 대표가 한국의 노동운동에 대해 따끔한 충고를 했다. 그는 기자 간담회에서 “빨간 띠를 머리에 두른 노동자들이 외치는 ‘경영진 타도(Crush the management)’ ‘회사를 죽이자(Kill the company)’ 등의 구호는 외국인 투자가들에게 굉장한 두려움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과격한 노동쟁의가 한국의 진면모를 왜곡시키고 있다”며 “이 문제만 개선된다면 한국의 투자매력도는 굉장히 올라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청해야 할 고언이 아닐 수 없다.

오버비 대표는 암참 내에서 ‘오버비보다 한국을 사랑하는 사람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소문난 친한파다. 그의 시각이 이 정도라면, 한국을 잘 모르는 해외 투자가들이 어떤 생각을 할지는 불을 보듯 자명하다.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회사를 죽이고 경영진을 타도하자는데 어느 외국인이 신변과 재산의 위협을 감내하며 한국에 투자하겠는가. 오래전부터 국제자본시장에선 “한국에 투자하려면 노조가 없는 기업을 택하든지, 노조와 분규 금지 계약을 맺으라”는 얘기가 나돈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그만큼 외국인 투자가들이 보는 한국의 노사관계는 위험수위를 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이렇게 투쟁적이고 소모적인 노사문화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에는 노동운동을 낡아빠진 이념의 구현 수단으로 여겨온 거대 노조들에 일차적 책임이 있다. 노동자 권익보호 등 노조의 본래 사명은 뒷전으로 미루면서 각종 정치적 이슈에 개입, 거리투쟁을 끊임없이 벌여왔다. 대한민국이나 소속 회사가 어떻게 되든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듯이 불법 파업을 일삼아온 것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 쌍용자동차 파업 등이 모두 그런 예들이다. 게다가 비정규직들의 희생을 볼모로 정규직의 집단이기주의를 채우는 이기심까지 보여왔다. 이런 노조도 문제지만,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겠다는 명분으로 노조의 부당한 요구에 적당히 눈감아온 일부 경영진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각국이 해외투자를 유치하는 데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런 마당에 폭력적인 노동시위가 계속 이어진다면 한국에 대한 투자매력은 급락할 것이 틀림없다. 정부는 안전하고 예측 가능한 투자처라는 인식을 외국 자본에 심어줄 수 있도록 불법·과격 노동행위에 법과 원칙을 엄정히 적용해야 한다. 화물연대 등 집단이익을 앞세워 빨간 띠를 다시 조여 매는 노조들이 줄을 잇고 있어 향후 노사관계에 먹구름이 일고 있다. 이렇게 노사갈등과 사회분열이 심화되면 우리 경제의 앞날은 어두울 뿐이다. 국가 이미지를 바로 세워 경제회복에 절실한 외국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노·사·정은 잘못된 노사문화를 바로잡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