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유권자는 JP총리 인정한 셈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7면

재벌들의 방만한 경영, 고위 관료들의 정책실기, 소모적인 정쟁 등이 빚은 환란의 불똥이 엉뚱하게 서민 대중들에게로 튀고 있다. 이에 따라 그들의 생계는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지금 서민들은 외환위기의 책임을 져야 할 사람들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시하고 있다. 재벌들이 손쉬운 정리해고를 하기에 앞서 주력사업까지도 포기하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는지, 국회의원들이 당리당략을 떠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펴는지를 예의 주시하고 있는 것이다.

시장경제는 자기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경제체제다. 그러나 지금 국민들이 보기에 가장 책임을 느끼지 못하는 쪽은 정치판인 것 같다.

정부수립 이후 사실상 처음으로 여야간 정권교체가 이뤄졌으나 정치는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순진한 국민들은 새로운 여당은 야당시절에 주창하던 바대로 국정개혁에 충실하고, 새로운 야당은 여당시절에 야당이 그래야 한다고 주장하던 바대로 책임있는 반대를 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그러나 대선 이후 지금까지 여야가 보여준 행태는 국민들의 실망과 분노를 사기에 부족함이 없다.여당은 야당으로, 야당은 여당으로 각자의 서 있는 자리만 바뀌었을뿐 무책임한 야당, 독선적인 여당의 구태가 되풀이되고 있다.

현재의 경색정국은 국무총리 임명동의안의 비정상적인 투표에서 시작돼 북풍을 거쳐 지난 4.6보선에서 영남싹쓸이로 이어지면서 더욱 악화되고 있다. 야당 수뇌부가 소속의원들의 자유로운 찬반투표 대신 목소리 큰 반대의원들의 주도로 결정된 당론을 획일적으로 따르게 한 것도 구태이고, 여당이 물리력을 동원해 투표행위를 원천봉쇄한 것도 역시 구태다.

그 결과 대통령 취임 이후 몇 달이 넘었는데도 국무총리서리라는 어정쩡한 상태가 계속되고, 심지어는 위헌시비마저 일어나고 있다. 만의 하나 헌법재판소가 야당의 서리체제 위헌주장을 받아들인다면 그 파장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충격적일 것이다.

그동안 국무총리서리가 결재한 국가 중요 서류의 법적 효력이 도마위에 오를 것이고, 이는 곧 국정마비로까지 이어질 수 있으며, 대외 신인도에도 금이 가 또 다른 제2의 위기가 도래할 수 있다.야당이 내세우는 임명동의 반대 이유는 이미 국민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실들이며, 지난 대선때 김대중 (金大中)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은 사실상 김종필 (金鍾泌) 씨의 국무총리 체제도 찬성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김종필씨는 김대중후보의 러닝메이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따라서 야당은 일단 총리지명에 동의해 경색정국을 풀고 국정운영을 정상화한 다음 정부에 대해 시시비비를 가리는 것이 책임정치가 될 것이고, IMF사태로 새가슴이 돼 있는 국민들의 답답증을 다소나마 풀어줄 수 있을 것이다.

만약 국회가 국민복지와는 무관한 파쟁을 계속하면 IMF 위기극복을 방관한다는 준엄한 국민심판을 면치 못할 것이다. 국민들은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신바람나게 살고 있는 사람들은 국회의원들이라고 여기고 있다.

바라건대 국민고통을 조금만이라도 덜어주고 그 고통도 분담하는 정치를 해주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정건택<한국케슬 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