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자동차 정비공 왕타오 열풍…자동차 15만대 정비 '불량품 제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왕타오 (王濤) 를 본받자. " 시대가 바뀌면 미인의 기준만 달라지는 게 아니다. 영웅의 모습 또한 변한다. 바로 중국이 그렇다.

60년대 초반에는 마오쩌둥 (毛澤東) 의 숭배자였던 군인 레이펑 (雷鋒) 학습 열풍이 불어닥쳤고 95년엔 멸사봉공의 공무원인 쿵판썬 (孔繁森) 을 따라 배우자는 바람이 대륙을 휩쓸었다.

그러나 중국경제의 '해결사' 주룽지 (朱鎔基)가 총리로 취임한 직후인 지난달부터는 평범한 자동차정비공인 왕타오가 새 시대 노동자의 모범으로 중국언론에 대서특필되고 있다. 공산당중앙 선전부는 '수천 수만의 왕타오가 필요하다' 며 홍보에 열을 올린다.

왕타오는 55년생으로 올해 43세. 산둥 (山東) 성 출생으로 75년부터 후베이 (湖北) 성 스옌 (十堰) 의 제2자동차 공장 정비공으로 일해왔다. 지난 23년 동안 그의 손을 거쳐 출고된 자동차는 15만여대. 그러나 단 한대도 불량품이 발생하지 않았다.

그의 학력은 내세울 만한 것이 없어 신상기록에서도 제외되고 있다. 왕타오는 자신의 정비경험을 틈틈이 기록, '자동차 전기공학' 등 4권의 책을 펴냈다. 지친 몸으로 오전2시까지 집필을 계속했던 것은 자신만의 정비노하우를 동료들과 나눠 갖자는 취지에서였다.

2000년대를 앞두고 새로운 영웅상이 필요했던 중국당국이 주목한 것은 그의 기술이 아니었다. '평범한 일에 대한 열정' 을 높이 산 것이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작업에 흠이 없도록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

87년 겨울에는 시급한 정비를 바라는 고객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이틀간이나 차디찬 눈속 땅바닥에서 뒹군 결과 이제는 고질병이 된 혈관종을 얻었다. 92년 겨울엔 사흘간 3백여대의 자동차를 정비 하느라 72시간동안 4시간밖에 자지 못해 혼절하기도 했다.

그의 집엔 16년째 당뇨병으로 고생하는 아내와 여행 한번 해보지 못한 딸이 있다. 왕타오를 보면 가정을 잊은 채 일에 몰두하던 60~70년대 한국인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그러나 사회주의 시장경제체제로 이미 전환해 물신주의가 팽배한 지금의 중국사회에서 낡은 사회주의적 발상의 소산인 '노동영웅 만들기' 캠페인이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로 남아 있다.

베이징 = 유상철 특파원

〈scyou@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