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46> 반도인 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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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자기의 ‘싸는(包) 문화’와 가방의 ‘넣는 문화’는 신발에서도 뚜렷이 나타난다. 구두는 좌우가 다르고 치수에도 한 치의 에누리가 없다. 자기 것이 아니면 들어가질 않는다. 그래서 원래는 다람쥐 가죽이었던 것이 유리 구두로 바뀌게 된 신데렐라의 이야기는 단순한 오역 때문이라고는 볼 수 없다. 유리 구두이기에 이 세상에서 오직 꼭 들어맞는 한 사람의 신발 주인을 찾아낼 수 있다. 그것이 왼쪽· 오른쪽 구분도 없고 발에 따라서 늘었다 줄었다 하는 짚신이었다면 이야기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나와 우리의 구분이 확실치 않아서 때로는 ‘우리 마누라’라고 말하는 한국인에게는 꽉 맞는 유리 구두가 아니라 오른발이든 왼발이든, 큰 발이든 작은 발이든 웬만하면 넉넉하게 포용하는 짚신이 편하다. 그것도 성에 안 차서 알에서 벌레들이 나오는 철에는 밟혀도 죽지 않게 느슨하게 만든 오합혜(五合鞋)를 신고 다닌 한국인들이다.

그리고 ‘유리 구두의 나라’ 서양문명이 몰아닥쳤을 때에도 한국인이 창안한 것은 군화가 아니라 독창적인 고무신이었다. 짚신보다 훨씬 더 신축자재의 신발로 역주행한 것이다. 동이든 서든 신발처럼 자신의 정체성과 문화적 동질성을 상징하는 물건도 없다. 방금 나는 ‘신발’이라고 했지만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이라고 했어야 옳다. 신발은 맨발과 반대되는 것으로 “신을 신은 발”이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신’을 벗는다고 하지 않고 ‘신발’을 벗는다고 한다.

맨발이 자연이라면 신발은 문명이요 문화다. 흙과 인간을 분리하면서 동시에 연결해 놓는 아슬아슬한 그 경계선에서 우리는 자신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그 문화의 동질성을 확인한다. 한국인을 비하할 때 일본인들이 “반도인”이라고 하는 것이나 한국인이 일본인을 “쪽발이”라고 하는 것은 말 자체를 놓고 보면 욕이 아니다. 단순히 지리적 특성과 신발을 신는 문화적 특성의 차이를 지적한 데 지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다만 인터넷상에서 유포되고 있는 “지정학의 정의 제4조-인접하는 나라는 적국이다”라는 낡은 개념 때문이다. 그러나 지정학(geopolitics)적 관점을 요즘 조금씩 유행하기 시작한 지리문화(geoculture)적 소통원리의 입장에서 보면 “반도인” “쪽발이”는 새로운 창조적 관계로 발전시킬 수 있다.

이 지상에서 ‘보자기 문화’를 가장 많이 공유하고 그것을 발전시켜온 나라는 한국과 일본이다. 도토리를 따먹고 살던 채집시대의 조문인(繩文人)들이 유라시아 대륙-한반도에서 야요이들(生人)이 들어와 쌀농사(稻作)를 짓는 농경시대를 연다. 그래서 헤이안(平安朝) 때의 황실이나 귀족들이 신던 ‘구쓰(沓)’는 그들도 인정하고 있듯이 한국의 ‘구두’란 말에서 비롯된 것처럼 발을 통째로 싸는 형태였다 .

육식 생활을 하는 서구 사람들이 고기를 먹고 난 뒤 그 동물 가죽으로 ‘구두(靴)’를 만들어 신었던 것처럼 벼농사를 짓는 사람들은 벼를 털고 남은 짚으로 신을 만들어 신었다. 그러나 짚으로 만드는 신은 한국과 같았지만 고온다습의 기후에 맞도록 일본 사람들은 엄지발에 끈을 끼고 발을 전부 노출시키는 쪽발이 모양의 ‘조리(草鞋)’와 ‘게다(下)’를 신게 된 것이다. 그러나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우리가 고무신을 만들 때 그들은 다비(足袋)의 천을 고무로 개량한 ‘지까다비’를 만들었다. 엄지발가락과 다른 발가락이 갈라진 모양으로 발 전체를 감싸기 때문에 발의 치수가 조금만 틀려도 들어가지 않는 신발이 되었다. 개화기에 와서 고무신과 정반대의 신발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이것이 운명을 갈라놓았다.

개화기 때 서양사람들이 지까다비를 보고 공장에 투자를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쪽발의 신발을 만들다 보니 어느새 한국과 공유하고 있던 보자기의 ‘싸기’ 문화가 서구적인 ‘넣기’ 문화로 변질되어 간 것이다. 신발만이 아닐 모든 사고체계도.

게다를 보라. 고온다습의 동남아 지방에도 일본과 똑같은 게다가 있다. 그런데 엄지발을 꿰는 구멍이 왼쪽과 오른쪽으로 각기 치우쳐 있다. 좌우가 다르게 디자인되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 게다는 한국의 짚신처럼 오른발·왼발을 가리지 않고 어느 발에나 신을 수 있도록 한가운데 구멍을 뚫어 좌우 개념을 하나로 어우른 것이다.

바로 이것이다. 서양의 구두와 달리 한국인들은 좌우가 없는 융통성과 신축성이 있는 신발을 만들어 냈다. 이것이 반도적 특성이다. 이 정신은 일본 문화의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이웃 나라인 한국과 일본은 지정학적으로 보면 이해가 충돌하는 적국이지만 지리문화적 소통관례를 통해서 보면 이 지상에서 가장 가까운 ‘보자기형 짚신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사제(師弟)요 친구다. 그러고 보면 한국과 일본의 보자기 문화, 짚신 문화를 죽인 것은 다름 아닌 일본의 군국주의 군화였다. 왜냐하면 한국의 짚신과 고무신, 그리고 일본의 조리·게다처럼 전쟁을 하기에 불편한 신발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다음 회 제목은 ‘물은 얼어도 물은 흐른다’입니다. joins.com/lee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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