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한건주의' 주택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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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요즘 정부가 봇물처럼 쏟아내는 규제완화 정책의 실상을 면밀히 살피노라면 앞뒤가 안맞는 생색내기용 발표가 많아 씁쓸하다. 전후 사정 검토없이 각 부처들이 한건 한다는 식으로 정책만 불쑥 발표해 혼선만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건설교통부가 내놓은 주택경기 활성화대책은 생색내기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다. 아파트 분양권 제3자 허용추진, 임대주택사업자 범위 확대, 양도세 면세대상 단축 등이 대표적 사례다.

우선 아파트 분양권 제3자 허용건을 보자. 건교부는 IMF이후 실직에다 봉급이 깎이고 은행대출마저 중단돼 아파트 중도금을 낼 수 없는 서민들에게 조금이나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8월께부터 준공 이전이라도 분양권을 되팔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중도금 낼 형편이 안되고 해약도 못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서민들은 건교부가 모처럼 국민편에서 일한다며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실제 효과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지게 돼있다.

부동산등기특별조치법에 준공이전 분양권을 다른 사람에게 팔더라도 준공 후 등기는 처음 분양받은 사람 명의로 해야한다고 규정돼 있기 때문. 예컨대 1억원짜리 국민주택규모 아파트를 분양받아 중도금 등으로 3천원만원을 넣다가 남에게 판 사람은 이 아파트 준공 후 1억원의 5.6%인 5백60만원의 취득.등록세를 고스란히 자신이 물어야 한다.

내집마련의 꿈을 접은 것도 서러운데 남의 집에 대해 세금까지 물어야 한다니 어안이 벙벙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건교부는 "세금 관련은 우리 소관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 면서 "이는 매매당사간에 해결해야 할 문제" 라며 나몰라라 하고 있다.

건교부는 또 1가구 1주택에 대한 양도세 면제기간 단축, 미분양 아파트에 대한 한시적 양도세 면제, 임대주택사업자 범위확대 등과 같은 '남의 부처' 업무를 구체적인 협의도 없이 불쑥 발표해 혼선만 가중시키고 있다.

이런 '속빈 강정' 정책들은 최근 대통령 업무보고용으로 만든 것이어서 더욱 씁쓸하다. 윗사람을 위한 일이 아니라 실제 국민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개발이 아쉽다.

손용태 〈경제2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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