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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전통악기, 맛깔스러운 어울림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 창단공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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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호 03면

‘민속음악은 모든 음악의 시작이자 중심이다.’
클래식음악가 레너드 번스타인이 생전에 남긴 명언이다. 지난 4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있었던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 창단공연을 보며 내내 이 말이 떠올랐다. 아시아 국가 간의 문화교류를 통해 세계에 아시아문화를 알리자는 취지 아래 창단된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는 기획단계였던 2008년 초부터 1년이 넘는 준비기간을 거쳐 무대에 올랐다.

한국을 비롯해 베트남·말레이시아·태국·싱가포르·인도네시아·미얀마·필리핀·브루나이·캄보디아·라오스 등 11개 아시아국가 52종의 전통악기와 80여 명의 음악인으로 구성된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는 세계적으로도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대형 프로젝트다. 아시아는 그간 우리에게 지리적으로는 가깝지만 정서적으론 이질적인 이웃이었다. 특히 동남아시아권 문화는 한국에선 오히려 영미권 문화보다 멀게만 느껴진 것도 사실이다.

공연을 보면서 가장 먼저 느껴진 것은 이토록 많은 나라의 뮤지션들이 한데 모였다는 놀라움이었다. 80여 명의 뮤지션으로 꽉 찬 무대는 공연 시작부터 관객에게 강한 인상을 전했다.

사실 많은 나라의 민속음악과 악기를 한자리에서 동시에 맛보기란 쉽지가 않다. 더욱이 오랜 시간 다른 모습으로 발전한 전통악기들이 한데 어우러져 화음을 빚어내기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런 우려를 잠재우듯 11개 나라의 악기들은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며 다양한 음악적 색채를 그려냈다.

‘쾌지나 칭칭’으로 힘차게 시작된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 창단공연은 아시아만의 화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공연은 나라당 한 곡씩으로 구성됐다.
인도네시아 여가수는 동남아 특유의 부드럽게 하늘거리는 창법으로 ‘벤가완 솔로’란 곡을 노래했다. 물 항아리를 치는 듯한 소리가 나는 타악기 연주로 시작된 미얀마음악 ‘키렛 프데이다’도 인상적이었다. 뒤뚱거리는 타악기 리듬과 다른 악기들이 서로 대화하듯 주고받는 재미있는 곡이었다.

음악이 이어질수록 관객의 호응도 좋아졌고, 다음 노래가 무얼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구수한 목소리와 외모의 남자가수가 등장한 브루나이의 무대는 이번 공연의 백미라 할 수 있었다. 노래 중간에 관객의 박수를 배경으로 시작된 흥겨운 춤은 우리네 잔칫집과 같았다. 이것은 어쩌면 이번 ‘한·아세안 전통 오케스트라’ 창단공연 성격을 가장 잘 보여준 무대였다고 생각된다.

헛기침을 하며 점잔을 빼는 파티가 아닌, 소박하고 흥겨운 아시아 동네잔치 말이다. 맛깔스러운 잔치를 준비하느라 뒤에서 고생한 스태프에게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그들의 땀과 노력이야말로 아시아 음악 모자이크의 소중한 한 조각이기 때문이다. 공연이 끝난 뒤 극장을 나서는 관객 대다수의 얼굴에서 밝고 기분 좋은 표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표정에는 언어의 장벽을 초월한 감동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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