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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인 뉴스<23> 범인 잡는 DNA

중앙일보

입력

미국 드라마 ‘CSI’를 보면 과학수사관은 범죄 현장에서 방진복에 마스크까지 쓰고 신발에 덧신을 씌운 채 증거물을 찾습니다. 이 같은 요란한 차림을 한 이유는 DNA 증거물이 수사 도중 오염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요즘 범죄자들은 어지간해서는 범죄 현장에 지문을 남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DNA 흔적까지 지우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DNA 분석으로 해결된 사건들이 꽤 많습니다. 지난달 27일에는 ‘디엔에이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안’이 입법예고 됐습니다. 이번 뉴스클립은 DNA 감식을 활용한 수사기법과 입법예고된 법안의 내용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박유미 기자

※도움말=대검찰청 유전자감식실 이승환 실장(이학박사), 법무부 형사법제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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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카락 한 올에 ‘그’의 모든 것 들어 있다

올 2월 전주지검의 검사실에서 원인 모를 화재가 일어났다. 김모(46) 경사가 자신이 기소된 데 앙심을 품고 불을 지른 범인으로 지목됐다. 김 경사는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라이터의 부싯돌에서 아주 적은 양의 피부 조직을 발견했다. DNA 분석 결과 김 경사의 것으로 밝혀졌다. 그는 구속기소됐다.

우리 몸 세포의 핵에는 실처럼 돌돌 말려있는 모양의 물질이 있다. 바로 DNA다. 이 속에는 생명체가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유전정보가 담겨 있다.

DNA 속엔 A·T·G·C 등 4종류의 염기 30억 개가 한 줄로 서 있다. 염기가 어떤 순서로 배열됐는가는 일란성 쌍둥이를 제외하고는 사람마다 다르다. 99% 이상은 모든 사람이 똑같은 순서로 배열돼 있다. 1%도 안 되는 부분만이 서로 다르다. DNA 분석은 이 가운데서도 아주 일부만을 다룬다. 전체로 보면 100만분의 1도 안 된다. 그러나 이 부분만을 분석해도 서로 다른 사람들이 똑같은 DNA를 가질 확률은 아주 희박하다. 지금까지 지구에서 나타난 전체 인류를 놓고 봐도 똑같은 DNA를 가진 사람을 찾을 수 없다. 사람마다 지문이 다르듯이 DNA도 제각각인 것이다. 이 때문에 DNA 분석은 유전자 지문을 찾는 수사기법이라고도 불린다.

● 1987년부터 수사에 활용 84년 영국의 과학자 알렉 제프리는 유전자의 다형성(多形性·같은 종이면서도 형태나 형질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현상)을 확인할 수 있는 검사법을 개발했다. 그는 유전자 지문이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그의 검사법은 친자확인 소송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87년 11월 DNA 분석은 사상 처음으로 범인을 찾는 데 동원됐다. 그해 6월 영국 브리스톨에서 여성 장애인에 대한 강도·강간 사건이 발생했다. 성폭행 피해자는 로버트 맬리어스라는 남자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영국경찰은 피해자 옷에서 검출된 정액의 DNA와 맬리어스의 것을 비교해 동일하다는 결과를 얻었다. 국내 수사기관의 DNA 감식이 화제가 된 첫 사건은 92년 ‘동두천 윤금이씨 살해사건’이다. 용의자인 미군 케네스 마클의 양말에 묻어있던 혈흔에 대한 감식 결과 윤씨의 것으로 드러났다.

● 100억분의 1g도 분석 가능 DNA는 거의 모든 세포에 있어 쉽게 얻을 수 있다. 혈액·정액·머리카락·침 등에서 DNA가 추출된다. 양은 100억분의 1g만 있어도 된다. 부패하거나 탄 시체에선 뼈속의 세포를 채취해 쓴다. 땀이 밴 장갑이나 복면에서도 DNA 증거를 찾아낼 수 있다. 범인이 버린 담배꽁초나 음료수 캔에서도 가능하다.

94년 미국의 O J 심슨 사건에선 오염된 증거물이 다 잡은 범인을 놓쳤다. 프로 미식축구 선수 출신인 심슨은 전처와 전처의 애인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LA 경찰은 심슨의 집에서 발견한 장갑에 묻은 피가 DNA 검사 결과 희생자의 것이라고 판명했다. 그러나 재판에서 심슨 측 변호인은 현장에서 수거한 혈액 샘플이 오염됐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과학수사연구소 연구원도 법정에서 실수로 심슨의 피를 자기 손에 묻혔다고 진술했다. 배심원들이 결정적 증거물을 인정하지 않아 심슨은 무죄판결을 받을 수 있었다.

● 한국은 DNA 수사 선진국 우리 수사기관의 DNA 분석 능력은 선진국 수준이다. 삼풍백화점 붕괴·대구지하철 방화 등 대형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대검 유전자감식실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서 희생자 신원을 밝히는 작업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DNA 감식은 이제 범죄수사의 기본처럼 여겨진다. DNA 분석은 범인을 잡을 뿐만 아니라 무고한 사람도 풀어준다. 미국의 ‘무죄 프로젝트’ 재단은 자신이 무고하다고 탄원한 사형수나 장기 복역자를 위해 증거물에 대한 DNA 분석을 다시 실시해 무죄를 입증해준다. 92년부터 지금까지 238명이 혜택을 입었다. 상당수는 사형수였다.

미아찾기 사업에서도 DNA 분석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많은 미아가 DNA 검사로 친자확인이 돼 부모의 품으로 돌아갔다.

11개 강력범죄 대상 ‘DNA정보법’ 입법예고

정부는 수사기관이 범죄자의 DNA를 채취해 관리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디엔에이 신원확인 정보의 이용 및 보호에 관한 법률’을 추진하고 있다. DNA 수집 대상과 방법 등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했다는 게 법무부와 대검찰청의 설명이다.

법안이 통과될 경우 흉악 범죄의 범인을 조기에 검거해 추가 피해를 막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국가가 개인의 DNA를 관리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프라이버시가 침해될 수 있다는 반대론도 나온다. 법무부와 행정안전부는 입법예고를 통해 법안에 대한 의견을 이달 16일까지 청취하고 있다.

● DNA 수집 대상이 되는 범죄자 살인, 강도, 강간·추행, 청소년 대상 성범죄 등 재범의 위험성이 높은 11개 종류의 강력범죄에 한정한다.

● 수집되는 DNA 정보 전체 DNA 중 2% 정도가 생명과 유전 정보를 담고 있다. 나머지 98%는 ‘쓰레기(junk) DNA’라고 불린다. 주로 쓰레기 DNA에 사람마다 다른 염기서열이 분포돼 있다. 수집되는 DNA 정보는 쓰레기 DNA의 일부로 누가 누구인지를 가려내는 목적으로 쓰인다.

● DNA 시료채취 방법 DNA 감식은 아주 적은 샘플만 있어도 가능하다. 보통은 면봉으로 입속을 살짝 닦아내는 방법으로 채취한다. 대상자가 거부할 경우 법원으로부터 ‘DNA 감식시료 채취영장’을 발부받아 채취하게 된다.

● DNA 채취 시점 경찰은 피의자를 구속할 때 DNA를 채취한다. 검찰은 불구속으로 재판을 받다가 유죄가 확정된 피의자의 DNA를 채취한다. 구속단계에서 이미 채취한 범죄자는 유죄확정 판결이 난 뒤에 다시 채취하지 않는다.

● DNA 정보 관리 주체 수형자의 DNA 정보는 검찰이,구속 피의자의 정보는 경찰이 각각 관리한다. 중립적인 관리기구를 국무총리 산하에 설치한다. 검찰과 경찰은 데이터베이스를 연계해서 운영한다.

● 외국 사례 영국·미국·프랑스·일본 등 대부분의 선진국에서는 DNA 데이터베이스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1995년 세계 최초로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한 영국의 경우 지난해 기준 인구의 7.5%에 해당하는 450만 명 이상의 DNA 정보를 보유하고 있다. 영국은 98년부터 2005년까지 미제사건의 34%(10만6902건)를 DNA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해결했다.

뉴스클립에 나온 내용은 조인스닷컴(www.joins.com)과 중앙일보 온라인 백과사전 ‘오픈토리’(www.opentory.com)에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궁금한 점 있으세요? e-메일 기다립니다. newscli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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