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증인 못구해 기업 돈줄 막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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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서울 화곡동에서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金모 (38) 씨는 은행대출 2천만원의 만기를 연장하지 못해 실의에 빠져있다. 은행에서 요구하는 보증인 2명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뛰었으나 모두가 피하는 바람에 이달말까지 해결하지 못하면 지금까지 물던 27%의 연체이자는 고사하고 은행에 가게 등 재산을 압류당할 판이다.

토목공사 전문업체인 D건설 尹모사장은 요즘 보증인 구하는 것이 주 업무다.서울 모구청 발주공사의 원청업체에 보증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만 해도 보증보험회사에 2명의 보증인만 세우면 보증서를 발급받을 수 있었으나 올해부터는 보증인은 4명으로 늘어난 반면 보증 서주겠다는 사람은 거의 없다.尹사장은 "집 명의를 아내이름으로 바꿔 한 명을 만들었으나 더 이상은 도저히 구하기가 어렵다" 면서 "보증인 못구해 공사를 포기해야 할 판" 이라고 울상을 지었다.

개인.기업부도가 급증하면서 보증인을 못구해 각종 경제활동이 마비되는 사태가 속출하고 있다.금융기관이나 기업들은 보증기준을 대폭 강화하고 있다.

대한보증보험 관계자는 "지난해만 해도 6천억원의 보증 손실이 발생했다" 면서 손실을 줄이기 위해 올해부터 보증서발급 기준을 대폭 강화했다고 밝혔다.반면 보증 잘못 섰다가 집 날리고 월급이 차압당하는 일이 속출하면서 '보증기피 현상' 은 더욱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대우자동차 김원 여의도지점장은 "보증인을 못데려와 할부구입을 못하는 고객이 부쩍 늘었다" 고 말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보증을 못받아 회사채발행.어음할인에 차질을 빚는 바람에 기업이 부도위기에 몰리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엔지니어링업체 P사는 8천만원짜리 어음을 은행에서 할인받지 못하는 바람에 석달째 직원 월급을 못주고 있다.

또 기술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를 못끊어 은행에서 벤처자금을 대출받지 못했다. P사 관계자는 "부사장.임원에게 보증을 서달라고 했으나 거부당했다" 면서 "종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고 말했다. 회사채 발행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LG증권 관계자는 "회사채 보증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인 보증보험이 조건을 대폭 강화했기 때문에 회사채를 발행하지 못하는 곳이 늘고 있다" 고 말했다.

신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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