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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현식의 시공짚기]동선은 꼭 짭아야하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미국건축가 루이스 설리번 (1856~1924) 은 1896년 '예술로서의 고층사무소 건물' 이라는 글에서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 (Form Follows Function)' 는 명언을 만들어 낸다.이 '3f' 로 촉발된 기능주의 (functionalism) 는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의 또다른 표현으로 쓰일 만큼 그 특질을 잘 드러내준다.

건물 형태는 그 건물이 담게 될 기능에서 이끌어내야 한다는 기능주의 논리는 이전의 건축과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모던' 이라는 의미의 실체로 간주되어 왔다.사실 구석기시대 동굴주거나 신석기시대 수상주거 형태 역시 기능에 의해 결정되었다고 볼 수 있으며 로마시대 요새와 수로 (水路) , 중세의 성채, 르네상스시대 궁전, 바로크시대 전원주택, 그리고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에 이르기까지 어느것 하나 기능과 형태를 분리하고는 생각할 수 없는 것들이다.

물론 우리의 전통건축, 심지어 달동네 판자집도 예외일 수 없다.그러나 20세기 모더니즘 건축을 유독 기능주의로 따로 이론화하는 것은 대규모 공장과 고층사무소 건축 등 새로운 기능의 출현에 따른 금세기 건축들이 형태에 기능이 표현되어야 한다는 모더니스트들의 신조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형태미학으로 출발한 기능주의는 합리주의와 혼돈되어 사용되면서 문자 그대로의 기능주의로 변질된다.'만일 형태가 기능을 따르는 것이라면 효율이 좋은 기능은 자동적으로 아름다운 형태를 창출할 것' 이라는 가정 아래 보다 싸고 실용적인 건물이 좋은 건축으로 인정되었다.

급기야 외관은 법규에 의해 결정되고, 외장재료는 재료제조업자의 상품 카달로그에서 선정되며 평면계획은 임대업 전문가의 손에 좌지우지된다.이렇게 합리주의로 경도된 기능주의가 우리에게 수입되면서 더욱 극단적으로 왜곡된다.

'동선은 가능한 한 짧아야 한다' '공용면적은 최소한으로 해 최대의 가용면적을 확보해야 한다' 등등이 마치 건축 규범으로 인식되었고 학교에서 그것들을 위한 기법들이 가르쳐 왔다.

결과는 기능주의라는 이름을 빌린 자본주의 논리만 난무하는 혼돈일 따름이다.이러한 혼돈 속에 몇몇 건축가들의 노력은 신선하다.

이일훈은 집을 나눌 수 있는 한 여러 채로 나누려 한다.스스로 빈자 (貧者)가 되려는 승효상은 방은 최소한으로 하고 대신 밖을 넓혀서 '좁은 방일 망정 편안함을 아는' 지혜를 보여주려 애쓴다.

건축을 하나의 작은 도시로 인식하는 조성룡은 도시의 길에 접속된 집 속의 길을 엮어 오히려 길게 걷게 한다.이들은 모두 반 (反) 기능주의자들로 보인다.

그리고 이들이 우리 전통건축을 작업교본으로 삼는 것으로 보아 퇴행하고 있는듯도 하다.그러나 이들의 작업이 기능이나 형태에 앞서는 삶과 건축의 본질을 탐색한다는 점에서 초기 모더니스트들과 궤를 같이하는 순수한 기능주의자들인지도 모른다.

만일 그들이 전위적인 실험정신을 잃지 않는다면 그들의 노력은 우리의 도시를 살만한 기능적 건축으로 채워나갈 수 있을 것이다.

민현식<건축가.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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