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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시장 ‘북한 디스카운트’ 없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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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더 이상 ‘북한 디스카운트’는 없는 것일까.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등으로 긴장이 고조되고 있지만 한국을 보는 국제 금융시장의 시선은 의외로 차분하다. 국가 신용상태를 나타내는 각종 지표는 오히려 개선되고 있고, 달러에 대한 원화 가치도 오르고 있다. 바짝 긴장했던 정부도 한숨 돌리는 표정이 역력하다.

1일 국제금융시장에서 외국환평형기금채권(5년물)에 대한 신용부도스와프(CDS) 프리미엄은 1.52%포인트를 기록했다. 외평채의 CDS 프리미엄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혼란스럽던 지난해 10월 6.99%포인트까지 치솟았다. 엔화 자금이 빠져나가면서 자금 경색이 나타날 것이라는 이른바 ‘3월 위기설’이 한창이던 올 3월 4.65%포인트에 달했다.


그러나 북한 핵실험 다음 날인 지난달 25일엔 1.48%포인트로 연중 최저치로 떨어졌다. 외평채 가산금리도 1일 2.42%포인트로 리먼 브러더스 파산 전인 지난해 9월 중반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북한과의 긴장이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3일 원화 가치는 달러당 1233.2원으로 연중 최고치를 기록했다. 시장에선 한국의 통화를 강하고, 안전하게 보는 것이다.

시장은 불확실성을 가장 싫어한다. 그래서 북한이 돌출 행동을 할 때마다 전전긍긍했다. 실제 200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했을 때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두 단계 내렸다. 하지만 이번엔 다르다. 1일 무디스의 톰 바이네 수석 부대표는 “북한의 도발로 불확실성이 높아졌지만 한국의 국가 신용등급 전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학습효과’라고 설명한다. 2003년 NPT 탈퇴, 2006년 1차 핵 실험 등을 거치면서 북한의 행동이 전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평가를 내렸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제금융센터 관계자는 “뉴욕사무소 보고에 따르면 월가에서도 북한의 목적이 적화통일이 아닌 후계 승계 작업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북한의 위협이 별 영향을 주지 못하다 보니 호전되는 국내 경제지표가 상대적으로 더 부각되고 있다. 산업생산(전월비)이 석 달 연속 플러스 성장을 하고 무역수지가 넉 달째 흑자를 기록한 것이 고스란히 주가와 원화 가치에 반영되는 것이다. 지난달에는 물가도 2.7%로 안정세를 보였다. 현대경제연구원 유병규 경제연구본부장은 “자금 사정이 넉넉해진 외국 투자자들이 위험자산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며 “특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분기에 유일하게 전 분기 대비 플러스 성장을 한 한국이 눈에 띌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북한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해서 국내 상황을 낙관하기엔 이르다. 한국투자증권 전민규 수석연구위원은 “지금 지표가 좋아진 것은 지난해 말 너무 많이 하락한 것에 따른 반작용 측면이 크다”며 “이런 효과는 초기엔 강하게 나타나지만 시간이 갈수록 탄력이 떨어진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4월 산업생산은 전달보다 2.6% 증가했지만 2월(7.1%), 3월(4.9%)보다는 둔화됐다.

특히 수출이 걱정이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줄어드는 이른바 ‘축소형 흑자’ 덕분에 무역수지 흑자가 나고 있지만, 원화 가치가 상승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은 3일 열린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원화 가치·유가·원자재 가격이 상승세로 전환하는 수출 환경에 대응해 하반기 수출 여건을 파악하고 대응책을 짜야 한다”고 주문했다.

최현철 기자

◆CDS=채권이 부도나면 보상해주는 일종의 보험 성격의 파생상품이다. 국가 부도 위험이 커질수록 CDS 프리미엄이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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