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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추모여행, 세상에서 가장 경건한 ‘소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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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 김수환 추기경의 묘소엔 유난히 나비가 많았습니다. 추모객들이 두고 간 꽃을 보고 몰려든 걸까요. 추모객들을 맞기 위해 그곳에 머물며 기다리는 걸까요.

참으로 얄궂은 일이 벌어졌습니다.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까요. 난감하군요.

그러니까 week&이 ‘추모 투어’란 기획을 궁리한 건 올 2월 김수환 추기경이 운명했을 때였습니다. 하염없이 밀려드는 추모 인파를 보며 문득 그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해외여행을 가면 꼭 유명 인사의 묘소를 들르지 않습니까. 유럽에 가면 괴테나 셰익스피어 같은 대문호의 무덤가에서 사진을 찍고, 비석에 쓰인 글귀를 읽어보고요. 미국 남부의 작은 도시 멤피스는 30년이 넘도록 엘비스 프레슬리를 팔아서 먹고 살지요.

우리나라에도 그런 문화가 뿌리내리는 건 아닐까 막연히 추측했던 게 이번 기획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급하게 떠난 국민배우 최진실을 아직도 많은 사람이 기억하고 있기에 한번 알아볼 만하다 싶었던 겁니다. 몇몇 인사가 안장된 공원묘지에 알아봤더니 놀랍게도 추모 투어는 이미 한참 전부터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생전의 그를 몰랐어도, 얼굴 한 번 마주한 적 없고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그를 기억하고 찾아가는 발길은 끊이지 않더군요. 그래서 취재 계획을 잡고, 보도 날짜를 6월 4일로 정했습니다. 전 국민의 추모와 애도의 날인 ‘현충일’을 염두에 둔 일정이었습니다.

한데 전혀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졌습니다. 지난해 2월까지 우리나라를 대표했던 지도자가 스스로 세상과 연을 끊었습니다. 추모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500여만 명이 국화 한 송이 들고 참배의 줄에 섰습니다.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겠다”고 명동성당 앞에 늘어섰던 그 긴 줄에 종교가 없었던 것처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 앞에 선 이들의 눈물에도 정치는 없었습니다.

누구나 죽음을 준비하진 않습니다. 천년을 살 것처럼 살 궁리만 하다 문득 맞는 것이 죽음이겠죠. 그러다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하게 되면, 또 그렇게 문득 자신의 삶과 죽음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그래서일 겁니다. 모르는 이의 죽음 앞에서도 경건해지고 애통해지는 것은….

week&이 어쩌다 가장 민감하달 수 있는 정치 현안에 발을 들여놓은 걸까요. 아닙니다. 다만 우리네 사는 모습을 들여다볼 뿐입니다. 죽음을 찾아 떠난 것도 아닙니다. 죽음을 곁에 둔 우리의 삶을 이야기할 따름입니다. 끝으로 세상의 모든 죽음 앞에 한마디 바칩니다.

‘부디 거기에선 행복하십시오. 우리도 여기에서 행복하겠습니다’.

글=손민호 기자, 사진=권혁재 전문기자

들꽃 피고 작은 새 우는 그곳. 고개를 숙이고 꽃다발을 바치며 묘비명을 읽는다. 과거로 흐르는 시간들, 되살아나는 기억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하세요” 가슴속 묻어 둔 말을 적는다. 그를 만나는 시간은 나를 찾는 시간이다.

사연 없는 무덤 없고 미련 없는 죽음은 없다. 그렇다고 모든 죽음이 뭇사람으로부터 기려지는 건 아니다. 세월이 흘러도 잊히지 않는 죽음, 그래서 여태 안타깝고 사무치는 죽음은 많지 않다. 그 흔적을 찾아 나섰다. 이른바 ‘추모 투어 여행지 4’다.

글·사진=손민호 기자

성지가 된 무덤 김수환 추기경

“하루에 1000명씩 오십니다. 추기경님 돌아가셨을 때 사람들이 네 시간씩 기다려 명동성당에 들어갔잖아요. 그때 사람들이 기적이라고 했잖아요. 이게 기적입니다. 여기가 성지예요.”

경기도 용인 천주교 공원묘지 안병주 관리소장의 설명이다. 공식 추모기간이었던 지난달 5일까지 하루 평균 추모객은 800명 선이었다. 추모기간이 끝나면 추모객 발길이 잦아들 줄 알았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추모객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다.

“어른이 없었기 때문이겠지요. 종교를 떠나 무작정 믿고 따르고 싶은 어른 말입니다.”

전국의 성당에서 버스를 전세 내 찾아오는 단체도 많지만 나들이 나온 가족도 많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 괜찮으냐”는 문의전화는 하루에도 여러 통 걸려오고, 요즘엔 공원 뒷산 등산로에서 내려온 등산객도 자주 눈에 띈다. 관리소는 날마다 참배객 수를 서울대교구에 보고한다. 추기경이 안장된 2월 20일 이후 추모 인파는 10만 명이 넘는다.

묘소 앞에 섰다. 비가 내리고 있었는데도 봉분을 둘러싼 생화는 생생했다. 꽃이 시들면 바로 치운다는 관리소장의 말은 사실이었다. 다람쥐 한 마리가 봉분 주위를 맴돌며 놀고 있었다. 평화로웠다.

이용정보 수원에서 광주를 잇는 43번 국도 위에서 이정표를 보고 찾아 들어가야 한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는 게 낫다. 031-334-0807. 코레일이 이달부터 수원역과 광명역에서 연계 버스를 이용해 추기경 묘소를 방문하는 참배열차를 운영한다. 031-255-3402.

그녀는 웃고 있었다 배우 최진실

최진실 묘소. 생전의 당신이 연상될 만큼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지난해 10월. 늘 꿋꿋한 웃음을 지어보이던 그녀가 모질게도 제 목숨을 끊었다. 8개월이 지난 지금, 그녀의 얼굴은 TV 화면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기억 속에서도 지워진 건 아니었다.

이른 아침 최진실이 묻힌 경기도 양평 갑산공원을 찾아갔다. 다른 묘소에서 막 하관식을 마친 참배객들이 그녀의 묘소를 둘러보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 곡을 했던 소복 차림의 상주도 있었다.

최진실 묘소는 잘 꾸며져 있다. 실례되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생전 그의 이미지처럼 아기자기하고 앙증맞았다. 묘지 왼편에 빨간 우체통이 서 있고, 조화를 비롯해 인형·종이학·사탕·빵·엽서 등이 묘소를 빙 둘러싸고 있다. 관리사무소에 따르면 최진실 묘소만 찾아오는 이들은 요즘에도 주중 50명, 주말 100명이 넘는다. 묘소 옆에 놓인 방명록엔 하루 20개 이상의 추모 글이 올라와 있다. 몇몇 연예인의 이름도 보인다. 빨간 우체통 아래 최진실의 사진이 놓여 있다. 예의 그 발랄한 웃음이다. 최진실은 죽어서도 웃고 있었다.

이용정보 양평 시내에서 청평 방향 6번 국도를 타고 가다 363번 지방도로로 갈아타고 5㎞쯤 직진하면 오른쪽에 갑산공원 이정표가 나온다. 공원묘지 꼭대기 능선 입구 오른쪽에 최진실 묘소가 있다. 031-772-2744.

한국 문학의 뜨거운 공간 시인 기형도

시인 기형도(1960~89)가 묻힌 산자락은 짙은 안개에 싸여 있었다. 몇 줄기 봄비를 맞았으니 구름이었을 테다. 그래도 안개였다고 적는다. 희뿌연 안개를 말하지 않고서 기형도 시를 말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다.

시인은 경기도 안성 천주교 공원묘지에 누워 있다. 묘비에 새겨진 ‘그레고리오’란 세례명이 낯설다. 기형도의 무덤은 문학을 동경하고 시를 꿈꾸는 이들에게 일종의 성지다. 20년 전 어느 허름한 극장에서 돌연사한 시인은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입』을 남겼고, 시인의 요절과 죽음의 그림자 짙게 드리워진 시집은 이후 기형도 신화를 빚어냈다. 이 시집은 20년을 꼬박 시집 스테디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3월 7일 기일을 즈음해 문단에서 소박한 추모행사를 열고 있다. 하나 무덤은 시비 하나 없어 휑하다. 요절한 시인은 말이 없었다.

이용정보 안성 시내에서 38번 국도를 타고 중부고속도로 방향으로 나아가다 용인 방향 70번 지방도로로 옮겨 탄 뒤 20분쯤 달리면 오른쪽에 입구가 보인다. 내비게이션을 이용하려면 주소 검색을 해야 한다. 안성시 보개면 북가현리 산 49-1번지. 구상 시인, 신상옥 감독, 음악인 길옥윤(본명 최치정)씨도 이 산자락에 잠들어 있다. 031-672-4276.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 가수 김성재

기형도 시인이 묻혀 있는 천주교 공원묘지 전경(上)과 가수 김현식씨 추모비 앞에 서 있는 낡은 사진 액자.

의외였다. 힙합 듀오 ‘듀스’의 김성재(1972~95)는 전설이 돼 있었다. 그의 유골이 안치된 경기도 성남 분당메모리얼파크에 따르면 15년이 지난 오늘도 추모객이 끊이지 않는다. 요즘에도 거의 매일 헌화하는 20대 여성이 있단다.

듀스는 1990년대 초반 X세대의 아이콘이었다. 특히 열렬 매니어층을 거느린 청춘 스타였다. 그러나 김성재의 사인은 아직 규명되지 않았다. 팬들은 지금도 재조사를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여러 상황이 그를 부활시킨 듯 보인다. 최근 한 청바지 업체가 생전 그의 사진을 이용해 CF를 제작한 것도 뜨거운 추모 열기 때문이다.

묘지 주위에는 꽃과 사진, 기념품으로 가득하다. 개중엔 김성재의 36번째 생일을 축하하는 검은 리본도 있다. 한국의 엘리스 프레슬리가 연상되는 추모 열기다.

이용정보 분당 시내에 이정표가 잘 돼 있다. 시내에서 멀지도 않다. 관리사무소 오른쪽 언덕에 가수 김현식(1958~90)의 묘소가 있다. 한때는 북적였지만 지금은 발길이 뜸하단다. 비바람 맞은 낡은 액자가 눈에 밟힌다. www.bmpark.co.kr/ 1566-6508.

하루 1만 명 넘게 찾는 ‘도심 공원’ 서울현충원 

서울 동작동 국립 서울현충원. 나라를 위해 힘쓰신 국가 유공자를 모신 공동묘지다. 그리고 이곳은 면적 143만㎡로 서울에서 가장 큰 도심공원이다. 하루 평균 입장객만 1만 명이 훨씬 넘는다. 봄에는 벚꽃이 좋고 가을엔 단풍이 좋다. 현충원 양쪽에 조성된 차 없는 길 ‘솔냇길’은 산책코스로 그만이다. 입장료·주차료도 없다. 실제로 돗자리 펴고 도시락 먹는 가족들이 곳곳에서 보인다. 참고로 서울현충원은 풍수적으로 천하의 명당이다. 관악산 줄기를 배경으로 하고 한강의 노량진을 내려다본다. 이른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지형이다. 서울현충원에 관한 몇 가지 사실을 소개한다.

국립묘지다 한때는 그렇게 불렸다.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산화한 호국 영령을 위해 1955년 건립한 국립묘지는 20년 만에 안장 능력의 한계치에 다다른다. 그래서 대전에 국립현충원을 세우고 경북 영천과 전북 임실에 호국원을 또 두었다. 경남 마산에 3·15 묘지, 서울 수유동에 4·19 묘지, 광주 5·18 묘지 등이 잇따라 들어서면서 2006년 동작동 국립묘지는 국립 서울현충원이란 새 이름을 얻는다. 따라서 국립묘지는 현재 모두 7곳인 셈이다.

‘석호필’이 계시다 현재 서울현충원에는 모두 16만5000여 분이 모셔져 있다. 시신은 5만4000여 위이고, 나머지는 위패다. 나라를 위해 싸운 군인만 계신 게 아니다. 정치인·경찰은 물론이고, 상해 임시정부 요인을 비롯한 독립운동가도 계시다.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손기정 선생,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 국제보건기구(WHO) 사무총장 이종욱 박사 등도 국가사회공헌자 자격으로 모셔져 있다.

외국인도 계시다. 캐나다인 프랭크 스코필드(1889 ~1970) 박사와 한국전쟁 때 통역관으로 복무했던 화교 두 분이 국가 유공자 자격을 인정받아 안장돼 있다. 특히 스코필드 박사는, 일제의 제암리 교회 학살사건을 현장 촬영해 일제의 만행을 해외에 알린 독립운동가다. 그의 묘비에 한국인 이름 ‘석호필’이 새겨져 있다. ‘석호필’은 요즘 ‘미드’에서 처음 나온 게 아니다.

박정희와 이승만 서울현충원에는 이승만·박정희 두 대통령이 모셔져 있다. 하나 두 묘소가 약간 다르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는 독립된 봉분에 따로 모셔져 있지만, 이승만 대통령은 프란체스카 여사와 합장돼 있다. 분명한 이유가 있다. 육영수 여사는 순직했기 때문이다. 영부인 자격으로 74년 8월 15일 광복절 행사에 참석했던 육 여사는 문세광이 쏜 흉탄을 맞고 쓰러졌다. 이와 같은 공로로 육 여사는 국가 유공자 자격을 얻었다.

이용정보 개방시간은 오전 6시~오후 6시. 연중 개방하지만, 산책을 즐기려면 현충일은 피하는 게 좋다. 인터넷 홈페이지(www.snmb.mil.kr)에서 미리 공부를 하고 가면 훨씬 유익하다. 단체일 경우 예약하면 해설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02-815-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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