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은의 세상풍경]이봄…꽃이 지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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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오늘도 허탕. 나를 사려는 사람이 없다.남루한 걸음걸음으로 가닿은 곳은 하필이면 벼랑길이던지. 옆사람을 쳐다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내가 서 있다.믿기지 않는 나다.나는 나다.

흙은 다시 허물어진다.추락하는 것은 정말 날개가 있을까. 소설가 이문열 대신 시인 김춘수를 떠올린다.망명정부…지폐…. 흩어져 날리는 꽃이파리를 바라보노라면. 문득 눈물이 솟는다.

허공이다.곧 바닥. 그 바닥을 치고나면 날개가 돋을까. 다 부서진 몸뚱이를 끌고 어딜 가자는 걸까. 소설가 이청준은 어떨까. 낮은 곳에 임하라는 지상명령을 흘려들은 죄. 대역죄.

벌써 승천을 생각한다.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이중.삼중의 저지선을 뚫고 달아나는 생동감, 혹은 건방짐. 어디에도 시민 (市民) 은 없다.오직 신민 (臣民) 만 설치고 다닐 뿐.

그림=최재은〈명지대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글=허의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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