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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리뷰]KBS2 '거짓말' 통렬한 표현으로 30대에 공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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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사랑은 교통사고 같은 것이라거나, 사랑은 없다거나, 그렇게 아픈거라면 평생 안해버리겠다거나 하는 KBS - 2TV 월화 미니시리즈 '거짓말' (극본 노희경.연출 표민수) 의 대사는 요즘의 TV드라마에서는 흔히 듣기 어려운 것이다.얼마전까지 안방극장을 풍미했던 트렌디드라마가 '그림' 과 '감각' 에만 지나친 무게를 실어주면서 소홀히 해버린 연기와 대사의 감칠 맛을 '거짓말' 은 실로 오랜만에 생생하게 되살려 내고 있다.

연하의 유부남 후배 준희 (이성재)에게 점점 끌려들어가고 있는 서른 세 살 미혼녀 성우 (배종옥) 를 비롯, 과부와 홀애비 처지로 다시 만난 어린 시절 동네친구 영희 (윤여정) 와 현철 (주현) , 성적인 결함때문에 은수 (유호정) 를 남몰래 포기해버린 동진 (김상중) 과 거리의 부랑아 세미 (추상미) 등 '거짓말' 의 등장인물들이 주로 빠져 있는 덫은 사랑이다.그러나 작가는 최근 들어 복고가 지나쳐 신파로 빠져버린 일부 드라마가 하듯, 이들의 사랑을 만화적인 수준으로 유형화하는 대신에 이런저런 조바심속에 진행되는 감정의 흐름을 섬세하게 추적해 간다.

이미 연애의 달고 쓴 맛에 지칠만큼 지친 성우는 준희에게 끌리면서도 스스로를 경계하는 것이 당연한 일. 소위 불륜 논쟁에 휘말리기 십상인 처지의 드라마 주인공인 성우가 자신을 위태롭게 쳐다보는 드라마밖 시청자와 꼭같은 상식과 이성을 대사에 담아내는 현실감은 요즘의 드라마로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그러나 '거짓말' 의 눈높이인 20대 후반~30대 시청자는 방송가의 시청률 분석 통설에 따르면 평일 10시 드라마, 특히 20세 전후가 주로 채널권을 장악하는 월화미니시리즈의 주고객은 결코 아니다.

덕분에 일.결혼.사랑 (성도 포함)에 대해 당돌하다 싶을 정도로 당당한, 관록의 연기자들이 읊는 대사에 공감하는 층은 그리 넓을 것 같지 않다.지난 14일의 '거짓말' 6회 끝부분은 성우와 준희의 사귐이 본격 궤도에 올라갈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통렬하면서도 감도 높은 대사로 '거짓말' 이 얻어낸 득점이 앞으로의 진행에서 통속적인 진부함으로 반감되지나 않을 지. 각 주인공들이 겪는 사건간의 연결이 유기적이지 못하고 다소 산만한데서 드는 노파심이다.

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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