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그라운드 록밴드 작명 '천태만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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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사람이 죽으면 이름을 남기고 호랑이는 죽으면 가죽을 남긴다' 고 했던가.그만큼 이름이 중요하다는 얘기. 사람들의 입을 타야 하는 밴드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 난립양상을 띠고 있는 언더그라운드 밴드의 경우 차별화를 위해 특히나 작명에 신경을 쓴다.한가지 특징이라면 영어 표현이나 심각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점. '불타는 화양리 쇼바를 올려라' 라는 희한한 이름을 가진 밴드. 화양리 밤거리를 거닐던 멤버들이 폭주족으로 오해를 사 경찰에 폭행당했던 '아픈 기억' 이 담겨 있다.이 사건 이후로 폭주족에 동정심을 품게 돼 '불타는 화양리' 라는 폭주족의 이름을 빌려왔다.

음악도 이름처럼 공격적이다.최근에는 부산에 '불타는 자갈치 화이바를 던져라' 라는 밴드가 결성되기도 했다.이처럼 음악 성향과 관련된 이름의 밴드는 또 있다.

'파고다 공원' '친일파 가족' 등 역사적 문제를 다룬 노래를 부르는 '새마을 운동' 은 '잊지 말자' 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삼청교육대' 는 '부조리한 사회를 싹 쓸어버리자' 는 다소 과격한 결성 취지와 연관이 있다.

'남산의 비명' 과 '탱크로 밀어버려' 등 곡을 만들고 데뷔를 준비하고 있는 '전두환 쁘락치' 역시 이들과 비슷하다.그저 떠오른대로 지은 즉흥적인 이름도 많다.

콘서트를 구경하다 옆의 관객이 뱉은 "저런 건 아무나 다해" 라는 말을 듣고 지었다는 '아무밴드' , 미국에서 성명미상 인물을 지칭하는 이름인 '존 도우' , 흔한 외국 여자아이 이름인 '앤' 등이 그것. '결혼한 애인 교통사고사 비관자살' 은 그저 튀어보려고 지었단다.다양한 의미를 담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정약용 프로젝트' 는 멤버들이 존경하는 인물인 다산 정약용에서 따왔다는 주장과 '정말 약올라 용용 죽겠지' 의 준말이라는 얘기가 엇갈린다.

'랜드 라라' 는 영어로는 'Land Rara' 지만 '낸들 알아?' 라는 의미를 담고 있고 '코코어' 는 자신들이 추구하는 음악계열인 '코어' 에 '코' 자를 덧붙여 지었으나 음료 코코아와 헷갈린다.

좋은 어감을 주는 이름도 있다.'하손비' 는 '하늘과 내 손바닥 사이의 비' 의 줄임말이고 '고스락' 은 최고라는 뜻의 순우리말이다.

외국에도 이와 같이 사연이 있는 밴드 이름은 많다.화장실 문에 낯익은 남녀의 그림 대신 '첨바' 와 '왐바' 라는 글자가 써있는 꿈을 꾼 한 멤버가 지은 '첨바왐바' 나 여배우 마릴린 몬로와 미국의 살인마 찰스 맨슨의 이름을 뒤섞은 기괴한 분위기의 밴드 '마릴린 맨슨' 은 대표적이다.'아빠' 로도 잘못 읽히곤 했던 '아바 (ABBA)' 는 우연히도 히브리어로 '아버지' 를 가리킨다.

또 멤버들 이름의 첫 글자이기도 하다, '비틀스 (Beatles)' 는 딱정벌레를 의미하는 'Beetle' 과 2차대전 이후 등장한 신세대를 지칭하던 말인 'Beat' 를 합성한 것. 하나 명불허전 (名不虛傳) 이란 말이 있잖은가.명예로운 이름은 마땅히 들을 만한 실적이 있어야 퍼진다는 뜻처럼 음악이 성공해야 '이름값' 도 제대로 할 수 있을 게다.

문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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