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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달라졌어요] ② 천안북중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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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북중 학생들이 첨단 시설을 갖춘 ‘English cafe’에서 원어민 교사가 진행하는 영어수업을 듣고 있다. 조영회 기자

학부모들은 아파트 밀집지역의 신흥 학교를 선호한다. 새로 지은 학교라 시설도 좋고 주변에 학원이 많기 때문이다. 반면 옛 도심 학교들에 배정되면 시큰둥한 표정이다. 그러나 이는 옛날 얘기. 천안 동·북부지역 학교들이 달라지고 있다. 천안교육청이 작년부터 시설개선과 학력신장에 힘을 쏟고 있다. 새 바람을 일으키는 학교들을 소개한다.

개교 60주년. 한때 천안의 명문으로 불리며 선망의 대상이었던 천안북중. 하지만 언제부턴가 신흥학교에 밀리기 시작하더니 ‘인기 없는 학교’로 분류되곤 했다. 가장 번화가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도 읍·면 지역 학생이 절반이나 된다. 성적은 하위 수준으로 면 단위 학교들과 비교해도 처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북중에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 시작된 것이다.

◆New Start 운동=천안북중은 지난해 한기옥 교장 부임 직후부터 이른바 ‘뉴 스타트 운동’을 시작했다.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학교 시설부터 갖춰 나가기 시작했다. 한 교장을 중심으로 교사들이 천안교육청, 동창회, 지역사회 등을 오가며 호소한 결과, 지난 한 해 동안 10억원이라는 큰돈이 시설 개선에 투입됐다. 프로젝션 TV가 최신 빔 프로젝트로 업그레이드 됐고, 수업을 방해할 만큼 시끄러운 소리를 내는 교실 바닥도 교체됐다. 과학실, 가사실, 특수학급 교실 등도 현대화 시설로 탈바꿈했다. 새롭게 신설된 ‘English Cafe’는 북중의 자랑거리가 됐다. 더불어 최하위권 탈출 노력도 시작됐다. 전 교사가 자신만의 명품 브랜드 수업 갖기 운동을 벌이는 등 교실 수업개선을 위한 노력들이 하나 둘씩 추진됐다. 특히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을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교과 중심으로 대폭 보완했다.

◆“학교는 못 믿어”=방과 후 학교는 교사들의 끈질긴 설득에도 불구하고 참여율 10%. 그나마도 출석률은 40%에도 미치지 못했다. 참담했다. ‘학원’과 ‘방과 후 학교’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지를 묻는 설문조사 결과, 학생과 학부모 대부분 ‘학원’을 선택했다. 야심차게 시작한 방과 후학교가 제자리를 찾지 못하고 있을 무렵, 지난해 9월 출제경향성평가(3학년), 12월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1, 2학년) 결과가 발표됐다. 전 학년이 면지역 학교 평균에도 못 미쳤다. 올 3월 전국연합 학력평가에서는 또다시 전체 학생의 35%가 교과학습 부진이라는 참담한 결과를 얻었다.

전 교직원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그 동안의 노력들이 체계적이지 못했다는 반성을 했다. 그리고 ‘한울타리 늘벗 방과 후 학교’ 프로그램을 개발, 도교육청으로부터 시범학교 지정을 받아냈다. ‘3Up 2Down’ 경쟁력, 실력, 행복 지수를 높이고 사교육비 부담, 교육격차 등을 끌어내리는 게 목표였다. 늘 가까이서 부족함을 채워주고 가꾸어주는 친구가 되겠다는 의미를 담아 프로그램 이름도 ‘늘벗’이라고 붙였다. 학부모를 초청해 설명회도 열었다. 교사들의 지난 노력이 헛되지 않았는지 300명 넘는 학부모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다.

◆차별화된 전략=강제로 학생들을 잡아둘 수는 없었다. 양적 목표는 달성할지 모르겠지만 학력 신장의 목표는 어렵기 때문이다. 경쟁력 있는 프로그램이 필요했다. 우선 방과 후 수업시간을 3시간으로 늘리고 다양화했다. 일반 학원처럼 종합반, 단과반을 구분했고 상·중·하 수준에 따라 반을 나눴다. 고교 입시를 앞둔 3학년은 중간과 하위 그룹을 다시 2개 반으로 세분화해 맞춤형 교육을 진행했다. 헤어디자이너 등 자격증 취득반도 만들고 애니메이션, 인형극, 국궁 등 모두 37개의 다양한 특기적성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대학생이 참여하는 멘토링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이를 위해 참여 학생 모두에게 급식실에서 저녁식사를 제공했다. 선택은 자유지만 한번 학교에 남아 방과 후 학습에 참여하기로 학생은 불가피한 상황을 제외하고 반드시 수업에 참여해야 한다. 3일 무단결석, 수업 중 3회 연속 ‘경고’를 받으면 책가방 싸서 집으로 가야 한다. 학부모로부터 “너무 하다”는 핀잔도 들었지만 학교를 믿지 못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였다.

◆학교가 달라졌다=‘늘벗’학교 출범 2달 만에 가시적인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일단 참여 학생이 급증하고 있다. 전 학년 1개반 모집도 어려울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아니었다. 1, 2학년 각 3개반, 3학년 5개반 등 모두 8개반이 모집됐다. 지금은 전교생 1320명 중 절반 가까이가 방과 후 학교에 참여하고 있다. 삼진 아웃으로 중도 탈락하는 학생들이 있었지만 이달 들어 140명이 늘어났다. 참여 학생들의 성적도 올랐다. 1차 고사 분석 결과 방과 후 학교 참여 학생 대다수의 성적이 향상됐다.

특히 교과종합 기초반 학생들의 경우 1학년 55%, 2학년 62%, 3학년 74%가 지난 3월 진단고사에 비해 성적이 좋았다. 교과학습 부진학생을 중심으로 운영된 1학년 ‘늘벗반’에서도 63%가 성적향상을 기록하는 등 방과 후 학교가 교육격차 해소에 기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교육비도 크게 감소했다.

최근 중간평가 결과 교과학습 프로그램에서만 모두 3192만원이 감소한 것으로 조사됐다. 임헌관 천안북중 방과 후 학교운영부장은 “학생과 학부모는 물론 교사들 스스로가 놀라고 있다. 아직은 성급한 판단이지만 천안북중이 옛 명성을 되찾을 날도 멀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장찬우 기자

‘점프업 북중’ 한기옥 교장
외부 강사 초빙, 방학 중 ‘늘벗’프로그램 지속

 

지난해 3월 천안북중학교에 부임한 한기옥 교장은 곧바로 ‘뉴 스타트 운동’을 주도했다. 그리고 올해는 ‘점프 업 천안북중’을 이끌고 있다. ‘새로운 출발’을 넘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다. 요즘 그는 학부모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받느라 바쁘다. 어려운 시기에 사교육비를 줄여 주었으니 고맙고, 자녀의 성적까지 오르니 더욱 고마운 일이다. 무엇이 천안북중 변화의 원동력이었는지 직접 들어봤다.

-성공적인 출발이다. 준비가 쉽지 않았을 텐데.

“학교를 믿지 못하는 학부모들의 마음을 돌리는 것이 가장 큰 장애였다. 우선은 전 교직원이 열정으로 매달려 만들어낸 방과 후 학습 프로그램이 장애를 극복하는 열쇠였다. 아이들의 성적이 오르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학부모들이 굳이 자녀를 학원에 보낼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자녀가 학교에 남아 공부하는 것에 대한 학부모들의 막연한 두려움을 떨친 것이 가장 큰 성과다.”

-수강료가 각각이다.

“수업을 진행하는 교사들이 스스로 판단해 적정 수강료를 정한다. 학생 정원을 채우지 못한 반이라도 신청 학생들이 원하면 폐강하지 않고 수업을 진행한다. 전 교직원이 한 뜻으로 동참하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이 같은 교사들의 열의는 수업의 질을 담보하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학부모들의 반응은 어떤가.

“평소 학교 행사에 적극적이지 않던 학부모들이 올 초 방과 후 학교 설명회에 300명 넘게 참여했다. 처음엔 불안해하던 학부모들도 학원보다는 학교가 아이를 마음 놓고 맡길 수 있는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된 것 같다. 늦은 시간(8시)에 하교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학부모와 인근 주민들이 ‘여기가 북중 맞아?’라는 농담을 주고받는다고 한다. 길에서 만난 한 학부모는 꾸벅 인사를 하면서 ‘밥도 주고(저녁 급식) 공부도 가르쳐 주셔서 고맙다’는 말을 하더라. 웃자고 한 얘기지만 교육자로서 큰 보람을 느끼게 하는 한 마디였다.”

-앞으로 계획은.

“학생들의 참여가 계속 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수업의 질을 유지할 수 있을까 고민이다. 1개반의 적정 인원인 30명을 넘기지 않을 생각이다. 외부에서 강사를 초빙하는 방법을 생각 중이다. 학기 중 학교에 남아 공부하던 아이들이 방학 중에 다시 학원을 찾을 경우 연계교육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방학 중에도 변함없이 프로그램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 중이다.”

장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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