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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상징 비둘기 ‘공공의 적’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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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평화의 상징’ 비둘기가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됐다. 배설물이 도시 건축물과 문화재를 훼손하고 깃털이 날려 생활에 지장을 초래한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남산골 한옥마을의 기와지붕이 집비둘기의 배설물로 더럽혀져 있다. 집비둘기는 문화재와 건축물을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됐다. [박종근 기자]


환경부는 31일 ‘야생 동식물 보호법 시행규칙’을 개정해 집비둘기를 유해 야생동물로 지정했다고 밝혔다. 지금까지는 건축물 등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쫓아내기만 했으나 앞으로는 시장·군수·구청장의 허가를 받아 포획할 수 있다.

현재 멧돼지·까치·고라니 등의 유해 야생동물은 농작물 피해를 본 농가에서 허가를 받아 직접 포획하거나 유해동식물구제단(한국야생동식물보호관리협회 소속)에 위탁해 포획하고 있다. 까마귀·쥐도 유해 야생동물에 속한다.

집비둘기는 1981년 서울시청 옥상이나 한강 둔치 등지에서 가축처럼 기르기 시작했다. 서울시는 86년 아시안게임과 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비둘기를 늘렸다. 천적이 없고 먹이가 많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야생동물로 분류됐다. 현재 수도권에는 집비둘기 100만 마리(서울 50만 마리)가 살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한국조류협회).

비둘기 배설물은 강한 산성을 띠는 요산(尿酸)이 들어 있어 건물을 부식시킨다.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에 있는 조선시대 초기의 문화재 원각사지 10층석탑은 비둘기 배설물을 막기 위해 유리로 씌워져 있다. 덕수궁 같은 고궁은 단청 보호를 위해 전각마다 비둘기 접근 차단용 그물을 쳐놓았다.

호남대 이두표(생물학과) 교수는 “집비둘기는 보통 1년에 1, 2회 번식하지만 도심에 사는 집비둘기는 먹이가 많아 7, 8차례 번식한다”며 “개체 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먹이를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동물보호연합 이원복 대표는 “비둘기를 기른 건 인간인데, 이제 와서 없애려 하느냐”며 “무자비하게 포획하지 말고 먹이를 줄이는 방식으로 개체 수를 조절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3월부터 최근까지 집비둘기 실태를 조사했고 이달 중 결과를 발표한다. 서울시 자연자원과 정흥순 팀장은 “9월께 포획 요령에 대한 전문가 용역 결과가 나오면 구체적인 관리 계획을 세울 예정”이라고 말했다. 환경부 자연자원과 조갑현 사무관은 “도심에서 총으로 포획할 경우 안전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에 포획 지역을 곡물창고·부두 등으로 제한할 방침”이라며 “먹이를 줄이거나 먹이에 피임약을 섞는 방식을 활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 프랑스 파리 등 외국에서도 비둘기 피해가 나타나고 있고, 이집트의 스핑크스도 비둘기 배설물로 훼손되고 있다. 2007년 8월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교량 붕괴사고의 원인으로 비둘기 배설물이 지목됐다.

한편 환경부는 국내 생태계에 심각한 피해를 주는 외래 동물 뉴트리아와 외래식물 가시박·서양금혼초·미국쑥부쟁이·애기수영·양미역취를 생태계 교란 야생 동식물로 추가 지정했다. 이에 따라 생태계 교란 야생 동식물은 16종으로 늘었다.

강찬수·임주리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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