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자살방지기금' 서두를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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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자살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경찰청 통계에 의하면 국제통화기금 (IMF) 체제이후 매일 30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IMF체제 이전에 비해 25%가 늘어난 것이다.이대로 가다간 실업자 2백만을 바라보고 IMF경제위기를 피부로 절감하게 된다는 6월이후엔 자살대란 (?) 이 날지도 모르겠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교적 가족관에 편부모.계부모에 대한 편견으로 '남은 자식 고생시킬 수 없다' 며 서구에선 보기 힘든 가족동반자살도 흔해 더욱 우려된다.자살은 인간이 극도로 소외감을 느끼면서 결정하는 최후의 선택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수십년만에 처음 닥친 마이너스 경제성장과 실직공포로 사회전반이 극심한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있다.이런 거대한 사회적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인간의 공격성은 극대화 돼 어떤 형태로든 행동으로 나타나기 마련이다.

공격성이 밖으로 나타나면 범죄요, 안으로 나타나면 자살이다.

결론은 간단하다.사회 안정을 위해 현재 겪고 있는 심리적 공황상태로부터 정신건강을 지켜줄 응급조처가 필요하다.

특히 실직을 가장 많이 당한 블루칼라인 소외계층의 정신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현실적 대책은 시급하다.다행히 자살은 예방이 가능하다고 한다.

자살자는 반드시 주위에 '단서' 를 남기는데다 대부분 심한 우울상태에서 자살하므로 자살기미가 있을 때 즉시 전문가의 상담을 받거나 우울증 치료를 하면 자살결행을 막을 수 있다고 의료인들은 말한다.우선 주변에서 소중한 물건을 나눠 주며 갑자기 옛날 일을 사과하는 등 신변을 정리하는 사람, '죽고싶다' '죽을 것' 이라는 말을 주변에 흘리는 사람을 간과하지 말자. 우울감.자괴심.죄책감등으로 말수가 급격히 줄고 밥을 안먹는 등 생의 의지를 안보이는 사람은 정신과 응급치료 대상이다.

그러나 하루하루 생활고에 시달리는 상황에서 죽음을 선택한 사람이 전문가를 찾아 자신의 정신심리상태를 치료받을 경제적 여유가 있을 리 없다.이제라도 실업기금에서 일부를 떼내 실업행렬에 낀 소외계층의 정신건강을 위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

이 기금으로 치료가 필요한 소외계층자가 응급상황은 넘길 수 있도록3~4회정도의 정신과치료를 어디서나 받을 수 있는 무료진료쿠폰을 발행하는 것은 어떨까. 더이상 자살을 방치해서는 안된다.말만으로는 위안이 될 수 없다.

급증하는 자살행렬을 막기 위한 현실적 대책마련이 요구된다.

황세희<생활과학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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