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116호 33면

올해 3월 러시아 대선 1주년을 맞아 여론조사 기관인 네바다센터는 누가 러시아의 진정한 권력자인지 묻는 조사를 하나 했다. 응답자 1600명 중 34%가 블라디미르 푸틴 전 대통령을 꼽았다. 50%는 푸틴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현 대통령이 권력을 나눠 갖고 있다고 답했다. 12%만이 메드베데프라고 응답했다.

채인택의 미시 세계사

실제로 푸틴은 러시아 하원(국가 두마) 전체 의석 450석 가운데 315석을 차지한 통합러시아당의 오너나 마찬가지다.

말 그대로 수렴청정이다. 푸틴의 권력은 국민의 지지로부터 나온다. 푸틴은 현직에 있는 동안 80%를 넘나드는 높은 지지를 받았다. 에너지를 무기로 한 힘 있는 외교로 러시아의 국제적인 위상을 높였다. 국민에게는 ‘강한 러시아’를 향한 재기의 희망을 줬다. 말 그대로 카리스마적인 지도자로 통했다.

하지만 세계 불황의 여파는 푸틴의 지지율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 월스트리트 저널(WSJ)에 따르면 올해 2월 러시아 여론조사센터가 1600명을 대상으로 조사했더니 지난해 12월의 80%보다 6%포인트 떨어졌다는 것이다. 수치에 변화는 있을망정 지지율 70%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2000년부터 8년간 대권을 잡은 푸틴은 3연임을 금하는 헌법 조항에 따라 지난해 3월 대선에 출마하지 않았다. 대신 심복인 메드베데프를 내세워 70% 넘는 지지율로 당선하도록 지원했다. 지난해 5월 메드베데프 취임 직후 자신은 총리를 맡았다. 하지만 그의 국정 지지도는 대통령보다 높다. 메드베데프는 같은 조사에서 지지도가 푸틴보다 5%포인트 뒤지는 69%에 머물렀다.

지난해 후반 본격화된 금융위기 이후 러시아 경제는 말이 아니다. 주가지수는 반 토막 났고 달러화 대비 루블화 가치는 35%나 폭락했다. 석유 판매 수입에 힘입어 6000억 달러에 육박하던 외환보유액은 3800억 달러로 줄었다. 그런 와중에 국민이 푸틴에게 국정 책임을 묻기는커녕 여전히 굳건한 지지를 보내주고 있다.

푸틴은 연 수입도 메드베데프보다 많다. 러시아 정부가 지난달 6일 공개한 고위직 재산 보고서에서 푸틴은 지난해 460만 루블(약 1억80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메드베데프는 414만 루블(약 1억6000만원)을 벌었다.

푸틴은 심지어 러시아 보드카 시장에서도 메드베데프를 누르고 있다. 올 1월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푸틴의 이름을 딴 ‘푸틴카’라는 보드카는 4.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다. 이에 비해 ‘메드베데프’ 상표의 보드카는 1%도 안 된다. 두 사람의 존재감이 얼마나 차이 나는지 보여주는 숫자다.

푸틴은 이미 2012년 대선에 도전할 의사를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올 1월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푸틴은 “메드베데프의 4년 임기가 끝날 때 공직에 출마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상에는 이런 전직 대통령도 있다. 비록 권위를 내세우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보하는 등 지향점은 우리와 사뭇 다르지만 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