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 두 동창생' 상반된 IMF처방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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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버드대학원 시절 선의의 경쟁자였던 제프리 삭스 하버드대 교수와 로렌스 서머스 미 재무부 부장관이 아시아 금융위기 해법을 놓고 상반된 견해를 내놓아 화제를 낳고 있다.43세의 동갑내기인 두 사람은 하버드대 대학원에서 함께 공부한 동창생이자 동료였다.

대학원 시절엔 로켓 과학의 수학 원리를 경제 분석에 적용하는 방법에 관한 논문을 함께 발표하기도 했다.또 번갈아 상대방을 초청해 저녁을 같이 먹으면서 곧잘 토론을 벌였다.이들은 28세였던 지난 83년 함께 하버드대 교수로 발탁돼 당시로선 최연소 교수 임용 기록을 세웠다.

미국의 워싱턴 포스트지 (紙) 는 5일 국제 사회가 주목하고 있는 미국 경제학계의 스타인 서머스 부장관과 삭스 교수를 대비시켜 소개했다.삭스 교수는 아시아 위기 이후 IMF를 가장 강력하게 비판하는 학자중 한 명이다.

그는 지난 1월 "국제통화기금 (IMF) 이 병든 아시아 경제에 고금리와 긴축정책 등 잘못된 치료법을 처방해 금융체계를 붕괴시키고 경제를 위태로운 경지에 빠뜨리게 만들었다" 고 주장했다.

반면 서머스는 최근 월스트리트 저널지를 통해 "아시아 위기의 직접적 원인은 정책적 실수와 과도한 부채 등으로 국내외 투자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었기 때문" 이라며 "IMF가 적절하게 대응해 1930년대 대공황과 같은 사태를 예방할 수 있었다" 고 반박했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상대방을 직접 거론해 비난하는 일은 없다.하버드대에서 교수직을 맡았던 두 사람은 지난 92년부터 다른 길을 걷기 시작했다.삭스 교수는 지난 80년대말 외채 위기에 직면했던 남미와 체제 변화를 겪었던 동유럽 국가들의 경제 고문으로 활약했다.

당시 그는 점진적인 개혁을 권유했던 IMF와 다른 노선을 취했다.외채 탕감과 서방국가들의 경제원조를 통한 과감한 시장개방과 금융개혁을 주장했다.이런 '충격 요법' 은 동유럽에서 성공적인 결과를 낳았다.

개인적 차원에서 개도국들에 대한 자문을 활발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삭스 교수를 '경제학계의 인디아나 존스' 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다.

이에 비해 서머스는 지난 93년 클린턴 행정부에서 재무부 차관으로 기용되면서 관료의 길을 달려나왔다.그는 94년말 멕시코 경제위기때도 금융지원에 앞장섰으며 최근에는 전 세계에 미국식 시장경제를 전파하고 다니는 전도사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학자 출신치고는 워싱턴 관계 (官界) 의 역학 관계를 잘 활용하고, 윗사람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장을 펼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그는 최근 로버트 루빈 재무장관과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FRB) 의장 간의 주례 회동에 정기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등 '재무부의 황태자' 란 별명을 얻고 있다.

그렇다고 두 사람의 경제관이 크게 다른 것은 아니다.두 사람 모두 조그만 충격이 어떻게 시장을 혼란으로 몰고 가느냐에 대해 광범위한 연구를 해왔다.

이들은 시장이 불완전할 지라도 정부 개입은 신중히 해야 한다는 시장지향적 사고를 갖고 있다.또 두 사람 다 뛰어난 기억력의 소유자이고 다이어트 코크와 스키를 가장 좋아하는 것도 특이한 공통점이다.

김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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