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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길찾는 일본경제]상.일선기업의 생존 몸부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일본 경제가 금융불안.경기침체라는 두개의 늪에서 살 길을 찾아 안간힘을 쓰고 있다.기업.금융기관 모두 감량경영 등 구조조정이 한창이다.이른바 '글로벌 스탠더드' 에 맞추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일본 기업들의 움직임을 3회에 걸쳐 살펴본다.

미쓰비시중공업 사장실에는 "국가를 위해서라면 우리는 한다" 가 적힌 액자가 걸려 있다.'일본 = 미쓰비시중공업' 이란 이 회사의 자존심이 한마디로 드러나는 표현이다.

그런 미쓰비시중공업도 2001년 매출목표를 당초 계획보다 15% 적은 3조엔으로 낮춰잡았다.'축소지향의 경영' 에 돌입한 것이다.

미쓰비시전기도 46년만에 첫 적자를 내면서 사장이 물러나 충격을 주었고 미쓰비시부동산은 해외부동산 투자실패로 6백95억엔의 손실을 기록했다.미쓰비시자동차도 1천1백억엔의 적자를 냈다.

최고의 미쓰비시그룹이 휘청거릴 만큼 아시아 경제위기와 일본 경제의 장기불황은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주식회사 일본' 의 지반이었던 제조업까지 흔들리면서 올들어 위기의식에 사로잡힌 간판급 기업들이 경영혁신에 대대적으로 나서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연공서열형 임금제도를 폐지하고 성과급을 도입했다.일본에서 최고 (最古) 이자 가장 보수적인 경영풍토를 가진 미쓰이그룹의 주력기업 미쓰이물산의 이런 변신은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미쓰이물산은 "앞으로 인사원칙을 구미 (歐美) 형으로 바꾸어 가겠다" 며 '일본식 경영' 과의 완전 결별을 선언했다.가전업계의 간판기업인 마쓰시타전기도 연봉제를 도입하고, 관리직에 대해서는 주가가 오르면 보너스를 주는 '주가연동 보수제' 를 실시키로 했다.

또 '종업원 중시' 풍토를 '주주중시' 풍토로 바꾸기 위해 자사주 1천억엔어치를 매입.소각키로 했다.임원진에는 성과급의 일종인 스톡옵션제도 (주식매입선택권) 를 적용했다.

모리시타 요이치 (森下洋一) 사장은 "소니에 뒤질 수 없다" 고 실시 배경을 설명했다.일본 중앙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말 현재 연봉제를 도입한 일본 기업은 전체의 18.5%.1년전에 비해 6%포인트가 늘어났다.

여기에다 "올해 연봉제를 새로 도입하겠다" 고 밝힌 기업이 9.9%여서 올 연말이면 일본 기업 4곳중 1곳 이상 (28.4%) 이 연봉제를 실시하게 된다.또 실업률이 전후 최악의 3.6%를 기록하고 있는 가운데 해고.중도퇴직 비율이 절반을 넘는 것으로 조사돼 일본에도 사실상 정리해고가 실시되고 있다.

일본 기업을 떠받쳐 왔던 연공서열.종신고용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이다.소니.캐논.무라타 (村田) 제작소는 한발 앞선 개혁으로 고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기업들이다.

그러나 이들도 다시 한차례의 변신에 나서고 있다.소니는 신입사원때부터 성과급 임금을 도입하고 38명의 중역진을 10명으로 줄여버렸다.

스피드경영과 경쟁에 방해되는 걸림돌은 모두 치워버리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캐논의 경영을 진단한 미국 컨설팅업체는 "미국보다 한발 앞선 첨단 글로벌 기업" 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변신을 위해 알짜배기 사업을 포기하는 기업들도 속출하고 있다.최대의 부동산.유통업체인 세이부 (西友) 그룹은 짭짤한 수익을 내온 편의점 체인 패밀리마트와 인터컨티넨탈 호텔을 매각했다.

또 미쓰비시전기와 오키 (沖) 전기도 미 모토로라가 D램 반도체 사업을 포기한 데 자극받아 범용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했다.제조업체들의 이런 변화는 금융기관에도 충격을 주고 있다.

새로운 풍토가 일본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도쿄미쓰비시.산와은행 등은 대장성 사무차관이 낙하산 인사로 이사장이 된 '연구정보기금' 에 내년부터 기부금을 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이같은 반발에 밀려 연구정보기금은 대장성 사무차관 출신의 이사장을 결국 평이사로 강등시켜 버렸다.얼마전까지는 상상도 할 수 없던 일들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다.

도쿄 = 이철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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