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간 발로 뛰어 담아낸 ‘생활 속의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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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23일 대구시 서구 평리동 서부도서관 1층 전시실. 벽에 걸린 패널에 미술관·식당·커피숍의 사진과 설명이 담겨 있다. 패널 아래 탁자에는 작품·그릇 등 해당 업소를 대표하는 소품이 진열돼 있다. 관람객이 잇따라 전시실을 찾았다. 대학생들은 전시회의 특징을 설명한다.

경북대 사회학과 천선영(앞줄 가운데) 교수가 제자들과 함께 펴낸 책 『일상 문화 공간』을 들어 보이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와 함께 하는 일상·문화·공간전’이다. 일상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사진과 소품으로 보여 주는 이색행사다. 모두 68곳이 출품했다. 음악감상실인 하이마트·녹향처럼 널리 알려진 공간도 있지만 생소한 곳도 많다.

전시회는 한 권의 책이 계기가 됐다. 책 이름은『일상 문화 공간』(노벨미디어·387쪽). 경북대 천선영(44·사회학과) 교수와 문화사회학 실습팀이 최근 펴냈다. 이 책은 그림·책·선율·맛·향기 등 주제별로 문화공간을 소개하고 있다. 그림이 있는 공간으로는 가창창작스튜디오·갤러리신라·갤러리전 등이, 책이 있는 공간으로는 구상문학관·더불어숲·새벗도서관 등이 실렸다. 음악감상실과 영화관, 음식점 가운데 특색있는 곳도 정리돼 있다. 업소별로 ‘이야기’를 통해 공간의 역사와 특성을, ‘컬처’ 코너를 통해 문화적 의미를 짚었다. 또 ‘인포’ 코너에는 찾아가는 길과 연락처가 담겨 있다.

천 교수가 이 책을 만들기로 한 것은 4년 전이다. 문화공간의 일상을 기록함으로써 학생들이 문화의 의미를 깨닫게 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작업에 참여한 학생은 문화사회학 실습 과목 수강생이었다. 학생들은 각자 맡은 업소를 취재했다. 수업시간 만으로는 부족해 틈날 때마다 현장을 찾았다고 한다. 청도·군위·영천 등을 맡은 학생은 수 차례 버스를 갈아타는 고생을 감수해야 했다. 부족한 취재를 보충하고 사진을 찍느라 평균 4∼5차례 현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한 학생이 원고를 쓰면 다른 학생이 빠진 정보가 있는지 확인하고 교정하는 식의 릴레이 작업이 이어졌다. 한 학기에 10여 명의 수강생이 작업에 참여하는 등 4년간 100명에 이르는 학생이 땀을 흘렸다. 문은지(24·국문과 4년)씨는 “현장 취재도 힘들었지만 10번 이상 글을 고치느라 고생이 많았다”며 “학생들이 힘을 합쳐 ‘작품’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뿌듯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천 교수는 “우리의 일상을 문화적 시각에서 관찰하고, 이를 토대로 보다 나은 문화 환경을 만들려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출판은 전시회로 이어졌다.

이 책에 소개된 전시장과 업소의 사장들이 자신의 가게 모습을 담은 사진을 전시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18∼24일 서부도서관에서 열린 행사가 그것이다. 전시회의 취지를 안 서부도서관은 무료로 전시실을 빌려 주었다고 한다. 이들은 대구의 6개 공공도서관에서 순회 전시회를 열 예정이다. 전시회를 주도한 김영수(48·이탈리아문화예술관) 관장은 “학생들이 수차례 방문해 인터뷰하는 등 발로 뛰며 취재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했다”며 “생활 속의 ‘문화’를 알리려는 이들의 노력에 보답하는 의미에서 전시회를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홍권삼 기자 , 사진=프리랜서 공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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