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레퍼’의 탈선, 고객정보 내다 팔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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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3000까지 가능’ ‘즉시 대출 가능’…. 공무원인 김모(42)씨는 이런 문자 메시지를 하루 대여섯 통씩 받는다. 그는 “지난해 은행에서 대출을 받았는데 그때 정보가 유출된 게 아닌지 찜찜하다”고 말했다.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불안감이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해킹을 통한 대량 유출에 이어 대출 상담사들이 고객 정보를 거래하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대출 상담사는 은행·저축은행·캐피탈사와 계약을 하고 대출을 알선해 주는 사람이다. 1만3000명에 육박한다. 최근엔 400만 건의 신용정보를 불법 유통시킨 은행 대출 상담사들이 무더기로 경찰에 적발되기도 했다. 이들은 서로 고객을 소개해 주면서 신뢰를 쌓은 ‘레퍼(refer)’관계로 엮여 있었다.

◆불황이 낳은 불법 거래=상담사들은 요즘 벌이가 신통치 않다. 불황으로 금융사의 대출 관리가 깐깐해졌기 때문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범죄수사대 장진욱 팀장은 “대출액의 2~3%를 수당으로 받는 상담사들은 실적이 줄면 불법 정보 거래의 유혹에 쉽게 빠지게 된다”고 설명했다.

거래되는 정보는 상담사들이 영업을 하면서 축적한 개인 파일이 돌고 돌며 살이 붙는 식이다. 은행 상담사가 2금융권으로 옮겨가면 그동안 쌓은 은행 고객 정보도 함께 움직인다. 또 과거 기업에서 대량 유출된 정보가 직업별·용도별로 재가공돼 팔리기도 한다. 상담사들은 영업을 위해 e-메일과 전화번호를 인터넷에 공개하기 때문에 ‘신상정보 파일을 사라’는 제안을 수시로 받는다. 가격은 보통 1000건에 10만~15만원이고, 고급 정보는 건당 2만원 이상에 팔린다.

불법 정보는 주로 전화 영업에 활용된다. 이 가운데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업체는 불법 업체일 가능성이 크다. 익명을 요구한 한 상담사는 “과태료(최고 3000만원)가 워낙 세기 때문에 일반적인 상담사라면 문자 영업을 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다른 상담사는 “레퍼의 소개를 받을 때도 반드시 고객 동의를 받는다”며 “불법 정보를 이용하는 상담사는 극소수”라고 말했다.

◆허술한 관리=정보 유출사고가 나면 은행은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는다. 그래서 금융사들은 상담사가 은행 전산망을 이용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하지만 허술한 구석이 많다. 지난 17일 경찰에 적발된 상담사는 공용컴퓨터에 신상정보 파일이 저장돼 있었다고 진술했다. 또 상담사는 금융사 직원이 아니라 개인사업자여서 1년에 한두 번 교육을 받을 뿐이다.

권역별로 나뉘어 있는 상담사 등록제에도 허점이 있다. 은행에서 문제를 일으킨 상담사가 저축은행 상담사로 옮겨도 솎아낼 방법이 없다. 이 때문에 문제를 일으킨 상담사를 퇴출시키기가 어렵다.

김종창 금융감독원장은 25일 금감원 정책평가회의에서 “금융사 개인정보는 철저하게 보호·관리돼야 한다”며 “대출 상담사 등에 의한 개인정보 유출사례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김영훈 기자

◆레퍼=‘위탁하다’라는 뜻의 영어 ‘refer’에서 유래한 대출 중개업계의 용어. 대출 상담사가 자신이 속한 금융사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는 고객을 다른 상담사에게 소개해 줄 경우 고객을 넘겨주는 상담사를 의미한다. 키맨(key man)이라고도 부른다. 대부분 서로 주고받는 사이지만 고객이 많은 금융사의 대출 상담사는 다른 상담사로부터 집중적인 구애를 받기도 한다. 대출이 성사되면 상담사는 받은 수당의 절반을 레퍼에게 소개비로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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