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시론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폐지해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41면

그러나 지방의회는 그러하지 못하다. 지방의원은 여전히 중앙당과 국회의원의 선거 조직책이다. 그리고 지역 주민의 사랑은 고사하고 오히려 왕왕 미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급기야는 서울의 도봉·양천·금천구 주민들이 구의원 의정비 인상분에 대해 부당이득 반환 청구 소송을 냈고 서울행정법원이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무릇 제도들은 의도한 대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있다. 지방의원 유급화가 그렇다. 지방의원 유급제를 도입할 때의 이상은 전직 전문가, 공무원, 교육자, 시민활동가, 가정주부, 뜻있는 젊은 정치인 등이 지방의회에 적극 진출하여 활력 있고 책임성 있는 지방정부를 도모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도입 후에 여러 번의 지방선거가 있지는 않았지만, 그러한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증거가 없다.

지방의원 유급제가 원래 기대했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면, 이를 없애야 할까?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유급제를 없애면 지방 유지들이 부업으로 지방의원을 하는 폐습이 강화될 것이다. 문제는 유급제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정당공천제라는 지방의원 충원 구조에 있다. 지금 한국의 지방의회가 지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지방의회의 ‘비자치성’이다. 행정부 사이의 지방자치는 민선단체장 출범 이래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반면 입법부 사이에선 퇴보하고 있다.

20세기 초 미국에는 소위 후견인 정치와 머신 정치가 유행했다. 후견인 및 머신 정치란 정당으로 묶인 정치 집단에서 아랫사람이 표를 모아 윗사람에게 받치면 윗사람이 그 대가를 자리와 이득의 형태로 아랫사람에게 건네주는 정치다. 그리고 이러한 정치는 포르투갈·스페인 등의 유럽 내륙 국가에서도 횡행했다. 지방의원에 대한 정당공천제를 실시하면서 어느덧 후견인 및 머신 정치가 한국에서도 더욱 심화된 것이다. 지방의회가 제 구실을 못한 채 내부 갈등 속에 파행하고, 주민이 큰 실망감을 느끼면서 의정비 반환 소송을 제기하는 상황은 후견인 정치와 머신 정치의 폐해가 심화되고 있음을 반증한다.

개선책으론 우선 중앙정치와 지방정치의 예속 관계를 심화시키고 있는 정당공천제를 최소한 기초자치단체 수준에서는 폐지해야 한다. 기초의원 정당공천제는 지방정치의 중앙 예속을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사실상 반자치적이다. 또 지방의회에 대한 공시제도가 도입돼야 하고, 성과 평가도 강화돼야 한다. 이제 대한민국 공공 부문에서 성과 평가 없이 봉급을 받는 집단은 거의 없다. 심지어 그렇게 말 많은 공기업들도 인터넷의 알리오시스템에 간부 판공비, 수입과 지출, 봉급 등을 공시하고 성과 평가를 받는다. 지방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시민이다. 지방정치에 있어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강하고 특히 지방 시민사회 활동에 대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최흥석 고려대 교수, 행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