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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손을 대면 차가운 쇠가 숨을 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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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1967년 철 용접기법으로 만든 ‘절규’가 국전에서 국무총리상을 받았다. 철·동판·알루미늄…. 그때부터 지금까지 그는 줄곧 금속을 녹이고 자르고 붙였다. 그리고 올해, ‘절규’부터 최근 알루미늄 조각까지 42년간의 작품을 내놓았다. 한국 추상조각 1세대인 엄태정(71)씨의 회고전 ‘쇠, 그 부름과 일’이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12년 만에 여는 국내 개인전이다. 미술관 전관에 조각 26점과 드로잉 26점이 전시됐다.

성곡미술관 야외 조각공원에 설치된 작품 ‘무제’(2000).  [성곡미술관 제공]


줄곧 쇳덩이를 다뤄온 이 백발 신사는 서울대 조소과 교수직에서 은퇴 후 경기 화성 작업장에서 조용히 작업 중이다. “금속은 아름다운 물성을 지녔다. 경외로운 내 집이라 생각한다.” 그는 학창 시절 ‘현대 추상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루마니아 출신 조각가 콘스탄틴 브란쿠시의 작품 세계에 감동해 추상의 세계에 이끌렸다. 금속은 기계를 수리하고 조립하는데 능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친숙해졌다.

대학원을 막 졸업한 60년대 후반, 미술계의 대세는 ‘앵포르멜(비정형미술)’이었다. 그 역시 이 영향을 받았다. 70년대를 거치며 기하학적 모더니즘 경향을 보였으며, 90년대 들어 ‘청동+기+시대’ 연작에서처럼 물성과 사물, 시간과 공간을 주제 삼았다.

“시대에 따라 선후배들이 따르는 조류가 변했고, 나 역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했다. 90년대 들어서야 비로소 내가 어디에 중심을 둬야 할지 확신이 섰다. 될 수 있으면 만들려 하지 않고 그냥 소재 자체를 바닥에 가볍게 툭 놓으려는 작업이다.”

견고한 물질의 아름다움을 일관되게 추구해 왔지만 재료에는 더러 변화가 있었다. 철과 구리 작업에 이어 2000년부터는 알루미늄의 일종인 두랄루민 작업을 시작했다. 비행기 동체에 쓰는 재료다. 90년대부터 먹으로 해 오던 드로잉에 최근엔 오방색 물감을 사용해 평면 회화 작품으로 제작해오고 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자잘한 것을 생략하게 되니 작업이 더욱 단순화된다”고 말한다.

6월 28일까지. 입장료 성인 4000원. 02-737-765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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