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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한국인 이야기 <36> 아버지의 이름으로 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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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누가 일제시대 ‘국민학교’를 다니던 때의 느낌과 그 상황을 시로 써보라고 한다면 아마 나는 이상(李箱)의 연작시 ‘오감도(烏瞰圖)’ 시제1호와 시제2호를 표절할지 모른다. 무엇보다 그때의 음산하고 어두운 장면들을 조감(鳥瞰)하려고 할 때 나는 어쩔 수 없이 솔개나 학이 아니라 한 마리 까마귀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별수 없이 이상처럼 조감도를 오감도(烏瞰圖)로 고쳐 쓸 수밖에 없다.

또 지성보다 ‘오감’으로 역사의 가도를 달리는 오감도(五感圖)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자연히 그 아이들의 모습은 “13인의 아이가 도로로 질주하는” 이상의 ‘오감도’ 시제1호를 그대로 닮게 된다. 역시 “길은 막다른 골목이 적당”할 것이고 “아이들은 무섭다고 그럴” 것이다.

시의 형태도 마찬가지다. 제1에서 제13까지의 아이들을 매스게임을 하듯 순서대로 줄지어 놓은 그 시 1호의 도형은 우리 아이들이 매일 아침 교정에 도열하여 규조요하(宮城遙拜)를 하며 ‘황국신민의 선서(皇國臣民の誓い)’를 외치던 것과 다를 게 없다. 13이란 숫자가 조선 13도를 가리킨 것인지, 최후 만찬의 예수와 제자가 모인 서양의 13수인지는 몰라도 그 질주하는 집단이 무서워하는 아이와 무서운 아이의 혼합체라는 것은 틀림없는 일이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애들에게 가르친 내선일체(內鮮一體)의 동조론이란 것이 바로 그런 것이다. 정말 그들과 우리가 한 몸뚱이(一體)라면 왜 황국신민을 매일 아침 맹서를 해야만 하는가. 진짜 아버지가 친자식에게 매일 아침 밥 먹기 전에 “나는 아버지 아들입니다”를 외치라고 하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자기들은 내(內)를 차지하고 한국인은 비하할 때 부르는 센진(鮮人)의 선(鮮)으로 부르는 내선일체란 구호 자체가 모순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일합병 후 한국을 여행한 일본의 시인 다카하마 교시(高浜虛子)는 그의 글 ‘조선(朝鮮)’에서 조선 아이와 일본 아이가 섞여 놀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리고 한국인 동네에서 가게를 열고 있는 일본 부인을 보면서, 조선 사람이 일본화하는 것이 아니라 “일본 사람이 조선화”하는 것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면서 그 큰 충격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시제1호가 ‘아이’라는 말을 횡으로 집단화한 도형 형태의 시라고 한다면, 시제2호는 ‘아버지’라는 말을 종으로 이어놓은 선형 모양의 시라고 할 수 있다. 아이의 시가 사회의 집단성을 보여준 ‘공간축 오감도’라면, 아버지의 시는 역사의 지속성을 나타내는 ‘시간축의 오감도’라고 할 수 있다.

“나의 아버지가 나의 곁에서 조을적에 나는 나의 아버지가 되고 또 나는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가 되고…나는 왜 드디어 나와 나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와 나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 노릇을 한꺼번에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냐.” 그들이 동조론을 펴면 펼수록 아이들은 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 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개인이나 만세 일계라는 천황가나 아버지의 아버지를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그 결과는 아주 수상해진다.

왜냐하면 일본 왕실의 상징으로 늘 정청(시신덴)의 오른편에 심는 다치바나(귤·橘)가 신라의 왕손 다지마모리가 구해다 준 것이고 그의 할아버지는 일본인이 신으로 모시는 아메노히보코(天日槍)로 일본에 철과 병기 등의 기술을 전파한 통치자였다. 메이지시대의 사학자 구메(久米邦武) 교수가 일본의 신도는 ‘제천의 고속(古俗)’이라는 글을 썼다가 도쿄대에서 파면당한 일을 생각해 보면 그들이 두려워한 고대사의 블랙박스 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짐작이 간다. 일본 왕실에서 갈라진 헤이게(平家)와 겐지(源氏)의 두 무사집단이 바로 백제계와 신라계의 후예들이라는 문제 제기는 일본의 저명한 역사 소설가이며 추리작가인 사카구치 안고(坂口安吾)만의 생각이 아니다. 일본의 인터넷 블로그에서는 금기시하던 그런 논의들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헤이게’가 모셔온 교토의 히라노 신사(神社)가 비류와 온조 그리고 성왕 등 백제의 다섯 임금을 모시는 곳이라는 것은 간무덴노의 황후가 백제인이라는 것처럼 공개된 사실이다. ‘겐지’가를 이끈 주역의 이름에도 신라자가 붙어 있는 경우가 있는 것도 그 X파일의 하나다(新羅三郞義光).

내선일체를 배우면서 오히려 아이들은 자신도 모르게 아버지의 아버지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한국의 민족과 일본 고대의 블랙박스를 통해 잃어버린 아버지들의 탱자나무를 배우고 있었던 것이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

※ 다음 회는 ‘대동아의 신화’입니다. joins.com/leeoyou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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