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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담배에 약한 그대 이름은 … 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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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회사에 다니는 오모(27·여·서울 은평구)씨는 7년 전부터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다. 직장에선 흡연 사실을 숨기기 위해 점심식사 뒤 다른 회사의 화장실에 가서 담배를 피웠다. 양치질로 입냄새를 없앤 뒤 회사로 돌아오는 생활을 3년 이상 반복했다. 하루 흡연량이 10~15개비인 오씨가 금연을 결심한 것은 올 초에 만난 남자 친구가 흡연을 못마땅하게 여겨서였다. 국립암센터 금연클리닉에선 오씨에게 금단 증상을 줄여주기 위해 금연보조제를 처방했다. 그 덕인지 지난 2개월간 담배를 일절 입에 대지 않았다.

그러나 아직도 흡연하는 친구를 만나면 ‘한 개비 피우고 말지’하는 유혹에 시달린단다.

31일은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제22회 ‘세계 금연의 날’이다. 국내에선 금연 캠페인까지 ‘성차별’을 받고 있다. 성인 남성 흡연율은 아직 세계 최고 수준(40.4%)인 데 반해 여성 흡연율은 상대적으로 낮다는(3.7%) 이유에서다. 그러나 여성 흡연을 힐난이나 호기심의 대상으로만 봐선 안 된다. 남성보다 건강상 피해가 더 크고 일단 시작하면 끊기가 더 어렵기 때문이다.

남성보다 니코틴 의존 심하고 심장병 위험 커

중견기업 이사인 박모(40·여·서울 광진구)씨는 간부로 승진한 뒤 회사 임원들과 잦은 모임을 하면서 흡연을 시작했다. 남성 임원과 함께 담배를 피우자 자신을 ‘여성’이 아닌 ‘동료’로 대해주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흡연량이 하루 10~20개비로 늘어나고 기침·피로 등의 증상이 나타나자 지난 3월 금연클리닉을 찾았다. 니코틴패치·금연약을 처방받았지만 한 달 만에 금연을 포기했다.

건국대병원 가정의학과 최재경 교수는 “박씨에게 흡연이란 행위는 단순히 담배에 대한 기호가 아니라 회사에서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적 관계 형성을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금연 결심을 계속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여성은 남성보다 담배를 끊기가 더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흡연을 하면 신체적·정신적으로 힘들 때 담배를 피우게 되는 의존성이 생긴다. 문제는 여성이 정신적으로 담배에 더 많이 기댄다는 사실이다. 또 여성은 남성보다 니코틴을 더 느리게 대사(분해)시킨다. 같은 수의 담배를 피우더라도 니코틴에 더 많이 노출돼 니코틴 의존증이 오기 쉽다. 일부 젊은 여성은 금연 뒤 절반 가까이 체중이 2∼5㎏ 늘어난다는 사실도 두려워한다.

하지만 흡연은 오히려 여성의 몸매를 더 망가뜨린다. 핀란드 헬싱키대학 연구팀이 1975~79년에 태어난 쌍둥이 4300명을 조사한 결과 사춘기 때 매일 최소 10개비의 담배를 피운 여학생은 피우지 않은 여학생보다 성인이 된 뒤 허리 둘레가 3.4㎝ 더 두꺼웠다. 이들이 자라서 과체중이 될 위험도 2배가량 높았다(미국공중의학저널 2008년 12월). 흡연 여학생은 술·안주 등 고열량 식품을 섭취하기 쉬워서다. 또 흡연이 내장 지방을 축적시켜 복부 비만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흡연 여성 피임약 복용 땐 뇌졸중 위험 10배 ↑

흡연 여성의 관상동맥질환(심장병) 사망률은 비흡연 여성의 3.5배에 달한다. 또 흡연 남성의 관상동맥질환 사망률에 비해서도 1.5배가량 높다.

흡연 여성이 피임약을 복용 중이라면 더 우려스럽다. 뇌졸중·심혈관질환의 발생 위험성이 10배나 증가해서다.

한림대 성심병원 가정의학과 백유진 교수는 “흡연량이 비슷한 남성보다 여성은 폐암·만성폐쇄성 폐질환(COPD)에 의한 사망 위험이 훨씬 높다”며 “조기폐경의 원인도 된다”고 경고했다.

또 가임 여성·임산부가 담배를 피우면 불임·자궁외임신·유산·사산·조산·저체중아 출산 등을 부를 수 있다. 늦어도 임신 15주 전엔 담배를 끊어야 한다. 임신 15주 전에 담배를 끊으면 저체중아 출산·조산 위험이 비흡연자와 비슷해진다는 연구 결과가 영국의학저널(BMJ) 3월 27일자에 발표됐다.

남성 위주 금연 정책 …‘퀵라인’에 도움 청하자

국가·지자체·금연단체의 금연 사업에서 여성 금연은 여전히 소외돼 있다. 담배 끊기를 원하는 여성은 병원·보건소의 금연클리닉을 방문하는 것이 좋다. 보건소에선 금연 상담·금연 자료·금연 보조제 등을 무료로 제공받을 수 있다. 인터넷 금연 지원 프로그램이나 금연 퀵라인(1544-9030)에 도움을 청할 수 있다. 9030은 ‘금연 성공’을 숫자로 표현한 것이다.

금연하려면 담배를 입에 물기 전에 흡연이 피부 노화·치아 변색·구취 등을 일으킨다는 것을 떠올리는 것이 유효하다. 금연 뒤 아름다워진 자신의 모습도 상상해 본다. 이런 연상 금연법은 미용에 관심 많은 여성에게 효과적이다. 금연 뒤 체중이 늘어나지 않도록 채소·과일 등을 위주로 한 저열량 식단을 짜고 물을 자주 마시는 것도 금연 성공률을 높인다.

글=박태균 식품의약전문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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