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투자유치 막힌 곳을 뚫자]5.<끝> 외국자본 기피증 심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한국경제 위기는 외국자본 기피증에도 원인이 있다' . 지난해 IMF사태를 예측했던 미국 컨설팅회사 부즈앨런은 한국보고서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여기다 국제화와는 동떨어진 억지, 비합리적 외국인 거부감, 일부 근로자들의 집단행동 등 외국인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일' 들이 외국인 투자자의 등을 떼밀고 있다.

이런 현상은 최근 기업 인수.합병 (M&A) 현장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대형기계업체 S사는 얼마전 유럽업체에 중장비사업을 판다고 발표했다가 한동안 근로자들의 농성으로 곤욕을 치렀다.

'고용을 보장하고 70개월분 임금을 위로금으로 달라' 는 요구 때문이었다.

무리라고 판단됐지만 계약이 틀어질까봐 회사측은 요구 일부를 수용하는 선에서 무마했다.

자동차부품업체인 M사 역시 공장 일부를 외국업체에 매각.합작하겠다고 발표한 후 노조와 고용보장 문제를 놓고 줄다리기를 벌여야 했다.

외국 기업인들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외국자본 유치가 시급한 나라에서 이런 행태가 벌어지는 게 이해가 안간다는 반응이다.

"외국인이 헐값에 기업을 사서 마음대로 사람을 자르고 저임금으로 착취할 것이란 내용의 사설이 한국신문에 버젓이 실린다.

외국인은 나쁜 의도를 가진 집단처럼 다루고 있어 당혹스럽다. " (아드리안 폰 맹거젠 한국바스프 사장) 이들의 불만에는 제도나 인식이 불합리.불투명하다는 지적도 포함돼 있다.

한 외국 기업인은 "정리해고를 하자는 건지, 말자는 건지 알 수 없다.

관련 법조항 자체가 모호한데다 노동장관은 일시에 30%이상 해고하면 위법의 소지가 있다는 식으로 말하니 어쩌란 말인가" 고 반문했다.

마이클 영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최근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 '해고 2개월 전 통보' 등 갖가지 단서조항을 둔 한국의 정리해고 제도로는 외국인 투자를 유치할 수 없을 것" 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자세도 문제다.

외국기업과 합작 논의 때 회사 내용은 생각지 않고 무슨 일이 있어도 경영권을 내놓을 수 없다는 억지가 다반사로 벌어진다.

한마디로 '경영은 내가 할테니 당신은 돈만 대라' 는 식이다.

M&A나 합작투자 협상과정에서도 국제관행에 맞지 않는 잣대를 들이대기 일쑤다.

정확한 현금흐름 등을 근거로 제시하기보다 주먹구구식 영업전망을 기초로 한 '영업권 프리미엄' 등을 앞세워 값을 부풀린다.

S증권 M&A담당자는 "IMF이후 한국기업의 실제가치는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는데도 기업측은 여전히 옛날 생각만 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미 언론재벌 머독이 데이콤과 합작해 한국 위성방송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하자 '머독 참여저지위원회' 란 모임이 만들어져 반대하고 나서는 바람에 데이콤은 사업타당성보다 '명분 만들기' 에 힘을 낭비하고 있는 실정이다.

최근 잇따라 열리는 외국기업 간담회에서는 "외제품이 발 붙이지 못하는 나라에 어떻게 투자할 수 있겠느냐" 는 불만이 단골메뉴로 등장하고 있다.

많이 바뀌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국내 산업기반 보호' 등을 명분으로 외국자본 진출을 막는 사례가 많다.

이는 특히 공무원들이 수시로 써먹는 논리다.

이러다 보니 명색이 세계 11위의 경제대국이라면서도 외국인 직접투자는 베트남 (96년 한국 23억달러, 베트남 22억달러) 수준에 머무르는 게 '투자 후진국' 한국의 현주소다.

특별취재팀=김왕기 차장, 이재훈·이정재·유권하·신성식·정경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