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러시아 예술의 심장 페테르부르크 둘러보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0면

백야의 뻬쩨르부르그에서
 이병훈 지음, 한길사
505쪽, 2만2000원

 러시아 작곡가 차이코프스키(1840~93)의 ‘사계’(The Seasons)는 1년 열 두 달에 곡을 붙인 솔로 피아노 모음이다. 곡을 주문했던 편집자가 달마다 러시아 시를 붙였다. 그 중 5월은 ‘백야(白夜)’.

“얼마나 황홀한 밤인가! (…)/북방의 러시아를 축복하노라!” 러시아 상징주의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시인 아파나시 페트(1820~92)의 작품이다.

북구 5월의 상쾌한 계절감을 가장 잘 보여주는 도시가 제정 러시아의 수도 페테르부르크라고 한다. 인구 460만 명으로 지구 최북단 도시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이다. 북위 59도에 위치해 여름에는 백야 현상이 두드러지고, 겨울에는 태양 구경이 쉽지 않다. 저자는 전작 『모스끄바가 사랑한 예술가들』(한길사)에 이어 이번엔 백야의 도시 페테르부르크에서 러시아 예술 기행을 이어간다.

페테르부르크는 제정 러시아의 절대권력이 만든 인공도시다. 17세기 초만 해도 스웨덴 영토였지만 전쟁으로 빼앗았다. 발틱해 핀란드만의 이 항구도시에서 러시아는 제국의 ‘서방화’를 꿈꿨다. 1714년엔 황제의 칙령으로 페테르부르크를 제외한 러시아 전역에 석조건물 신축을 금지할 정도였다고. 러시아의 석공과 건축자재는 모두 이 도시로 집결했다. 이렇게 대(大)러시아의 국력을 쏟아 부은 도시 곳곳이 예술작품으로 남았다.

러시아 바로크 양식을 대표하는 ‘겨울궁전’은 지금 에르미타주 박물관이다. 1917년 볼세비키 혁명정부는 이곳을 박물관으로 선포했다. 화려한 황실 컬렉션이 어마어마하고 ▶렘브란트 ▶고흐 ▶세잔 ▶마티스 ▶피카소 등의 유명 작품이 즐비하다.

하지만 페테르부르크의 예술적 깊이를 더하는 건 당연히 러시아 문학 거장들의 발자취. ▶푸슈킨(1799~1837) ▶도스토옙스키(1821~81) ▶고골(1809~52) 등의 흔적과 인연이 박물관으로, 작품 속 장면으로 남았다.

도스토옙스키가 말년에 살았던 집은 1971년에야 박물관이 됐다. 사회주의의 교만함을 경고했던 반(反)사회주의자였으며, 러시아 정교의 가르침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했던 이 작가를 공산체제는 용납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다른 한편으론 ‘우울한 미치광이의 도시’로 페테르부르크를 그렸던 그의 작품에 이 도시가 섭섭해 했던 건 아닐까.

저자의 글은 다소 장황하나 순간순간 미려한 문장으로 빛난다. “백야, 새파란 하늘에 달이 빛난다.” 그 도시에 가고 싶게 하는 문장이다. 백야 축제는 자정에 시작한다고 한다.

배노필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