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의원 이익만 대변하는 국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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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당리당략 (黨利黨略)' '몸싸움과 날치기' '파행과 공전 (空轉)' …. 지난 50년간 대한민국 국회 앞에 수없이 붙어왔던 수식어들이다.

이런 모습에 익숙해져서인지 국민들은 국회와 국회의원을 불신대상 1호로 꼽는 데 별로 주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래도 IMF관리체제라는 국가적 위기 앞에서는 여야가 마음을 비우고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국회상을 보여주겠거니 하고 기대해봤지만 이것 역시 '정치를 모르는' 국민들의 '순진한' 생각이었음이 입증됐다.

김종필 (金鍾泌) 총리 임명동의안 처리문제로 금쪽 같은 2주일을 허비한 국회가 오늘 드디어 열린다.

실업대책 등 시급한 문제해결을 위해 급한대로 추경예산안만 떼내 처리한다고 한다.

추경안은 여야간 뚜렷한 쟁점이 별로 없는 사항이다.

국회는 열려도 아직 여야관계가 정상화된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러면서 여야는 추경안 처리와 함께 국회 상임위의 소관부처 조정, 국회의원의 공직선거 사퇴시한 조정문제를 슬그머니 의제에 끼워넣었다.

둘다 의원들과 밀접한 이해관계가 있는 사안들이다.

정부조직이 개편됐기 때문에 이를 다룰 상임위가 소관부처를 조정해야 하는 일은 당연하다.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만큼 공직사퇴 시한문제를 다루는것도 시비걸 일은 아니다.

그러나 국회가 산적한 현안은 놔둔채 자기들의 이해가 걸린 문제만을 우선처리하는 것은 해도 너무한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권한 남용이란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 같다.

'힘있는' 부처를 서로 끌어가려는 상임위별 로비와 대결도 볼썽 사나울 뿐더러 더구나 국회의원이 지방선거에 나가려면 선거개시일 90일전에 공직을 사퇴하도록 돼있는 조항을 60일로 축소, 소급적용하는 것은 위헌소지마저 있는 중대 사안이다.

또 고스톱 사건 의원들의 문제는 아예 거론조차 않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힘들다.

국회에는 엄연히 윤리위가 구성돼 있는데도 누구 하나 이 문제를 꺼내는 사람이 없다.

동업자끼리니까 눈감아주자는 것인지, 의원들의 '도덕 불감증' 때문인지 그 속을 헤아리기 어렵다.

만약 정부부처에서 관련 공무원들이 업무중 고스톱을 쳐 물의를 빚었다면 장관이 국회에 불려나와 곤욕을 치르고 있으리라. 파행으로 치닫던 여야가 대화 테이블에 나오게 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지금의 국회를 보고 있노라면 국회가 국민의 대표기관인지, 의원들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이익단체인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이정민〈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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