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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금융감독위원회 이헌재 초대위원장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다음달 1일 발족하는 금융감독위원회 이헌재 (李憲宰) 초대위원장. 금융권 전반의 총감독권자로 금융계뿐만 아니라 기업들로부터도 주목을 받고 있다.

李위원장이 강조하는 것은 시장과 자율이 원활하게 돌아가도록 하는 '시스템' 의 정착이다.

양면적인 것 같지만 이를 위해 엄격한 감독이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다.

정권 초기의 긴장된 분위기 탓도 있지만 자신이 설정한 목표를 실현해내려는 그의 태세나 의지가 강력하다.

처음부터 강성 (强性) 위원장을 만났다고 금융계는 바짝 긴장하고 있다.

증권감독원 3층에 임시로 마련된 위원장실에서 李위원장을 만나봤다.

인터뷰 도중 그는 "부작용이나 시행착오를 각오하고…" "상당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라는 말을 다섯번이나 반복했다.

- 금감위 사무실은 어디에 둘 것인가.

제일은행 본점 얘기도 있었는데.

"증감원 건물을 이용하겠다.

제일은행에 들어갔다가는 은행 구조조정에 걸리적거릴 수도 있다.

은행이 몰려 있는 곳에 두자는 말도 있었으나 좀 떨어져 있는 것도 괜찮다고 본다."

- 사무국을 두는가.

"안둔다.

비서실.기획예산 등 최소한의 기능을 위한 조직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금감위 밑에 감독원이라는 실체조직이 있으므로 중간에 또 사무국을 둬 정책을 수립.조정할 이유가 없다."

- 재무구조개선협약을 통해 은행이 대기업 구조조정에 적극 개입하게 됐다.

은행 소유구조나 경영행태상 제대로 되겠는가.

"어렵다.

내부적으로 축적된 노하우도 없고 해본 경험도 없다.

현재 은행이 가지고 있는 기업평가 기능으로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예금을 받아 대출해주기만 하던 은행이 처음부터 잘 할 수 있을 것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은행 이외에는 할 곳이 없다."

- 그렇다면 금감위가 개입할 수도 있다는 얘기인가.

"개별기업의 구조조정에 직접 간섭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단 은행이 기업에 질질 끌려다니거나 자구노력 점검을 게을리하는 등 규정을 어길 경우 자동적으로 은행에 제재를 가하는 '자동격발장치' 를 만들어 놓겠다."

- 금융기관 부실 처리에 대한 방침은.

"그동안 누적된 부실채권은 성업공사가 상당량 매입해줬다.

나머지 부실채권 및 앞으로 생기는 부실은 은행이 자체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더이상 납세자 부담으로 보전해줄 수는 없다.

정부는 도울 만큼 도왔다."

- 은행이 혼자 힘으로 처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는가.

"부실을 과감하게 잘라내야 하는데 은행들이 우물쭈물하고 있다.

그냥 안고 있으면 부실은 더 커진다.

살아남으려면 과거의 누적된 부실을 빨리 해결해야 한다.

혼자 힘으로 안되면 외국자본이라도 끌어들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장이 은행을 외면한다."

- 성업공사를 통해 부실채권을 추가로 털어줄 계획은 없는가.

"성업공사가 부실채권을 너무 많이 사주면 은행 스스로 처리하려는 노력이 해이해진다.

반대로 그냥 놓아두면 은행이 부실화해 금융기능이 마비된다.

균형잡힌 정책을 세워 은행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몰아갈 것이다."

- 은행부실화를 어떻게 사전에 막겠는가.

"최근 감독원이 도입한 조기경보장치가 있으나 주의.경고.개선명령.시정명령 등으로 단계가 이어져 너무 느슨하다.

이렇게 되면 무슨 문제가 생겨도 빨리 대처하지 못하고 끝까지 가게 된다.

이상징후가 나타나면 자동적으로 또 즉각적으로 조치에 들어가는 시스템을 만들겠다."

- 부실경영에 대한 은행 임직원의 책임의식이 미흡하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무슨 조치를 강구중인가.

"자율인사라고 해 모두 능력있는 사람을 뽑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자율원칙을 바꿀 수는 없다.

다만 앞으로 경영능력이 없는 사람은 견디지 못하는 분위기가 될 것이다.

예컨대 A은행은 자구노력에 가시적 성과를 내는데 B은행은 가만히 있다면 그 행장.임원이 자리를 지킬 수 있겠는가."

- 경영정보공개 및 소액주주 권리보호를 위해 추진중인 제도가 있다면. "예컨대 소액주주에게 장부열람권을 주는 등 권리를 대폭 강화하겠다.

또 외국 공시제도를 충분히 검토해 공시대상 범위와 기준을 정하겠다.

국제통화기금 (IMF) 이 요구한 수준보다 훨씬 폭넓게 만들 생각이다."

- 위원장 재직기간중 꼭 해놓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정보처리과정을 전산화하겠다.

또 정보공유체제를 갖출 계획이다.

이와 함께 감독기관의 투명성을 높이겠다.

자의나 재량의 여지를 없애 스스로 다른 선택을 할 수 없도록 자기 기속력을 갖도록 하겠다."

- 여러 개혁방안이 현실적으로 무리없이 수용될 수 있겠는가.

"상당한 문화충격이 있을 것이다.

기존 시스템에 유연성이 없기 때문인데 적응이나 변화과정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을 것으로 본다.

감독기관도 쉽게 이래라 저래라 하고 싶은 것을 참아내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 스스로 인내심이 있는 성격이라고 보는가.

" (웃으며) 그렇게 느긋한 성격은 아니다.

화끈한 결과를 의식하기보다 먼저 시스템을 잘 만들고 이것이 돌아가도록 하겠다.

시스템이 작동할 때까지는 들들 볶는다고 할 정도로 압력을 가하겠다."

정리 =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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