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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엄사, 법 제정 더 큰 숙제 남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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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1일 대법관 9명의 다수 의견으로 ‘존엄사’를 인정하고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환자의 인공호흡기 제거를 명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법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연합뉴스]

▶뉴스 분석  대법원이 존엄사를 허용하면서 1997년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12년간 계속돼온 논란에 마침표를 찍었다. 대법원은 세 가지 연명치료 중단(존엄사) 허용 기준을 제시했다. ▶환자가 회복 불가능한 사망 단계에 진입해야 하고 ▶연명치료 중단에 대한 환자의 사전의료지시가 있어야 하며 ▶사망단계 진입 여부는 전문의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의료 현장에서는 처벌을 감수하고 연명치료를 중단해 왔다. 서울대병원은 2007년 말기 암환자의 85%를 그렇게 했다. 삼성서울·세브란스·서울아산병원도 심폐소생술 금지 요청서를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기준은 제각각이다. 이런 점을 감안해 대법원이 큰 틀에서 원칙을 제시했다. 이번 판결을 계기로 존엄사 법제화가 당겨지겠지만 난관이 많다. 우선 ‘회복불가능’의 개념부터 의견이 엇갈린다. 미국 워싱턴·오리건주는 의사 두 명이 잔여 생존 기간을 6개월 이내로 판정한 환자에게 존엄사를 적용한다. 이번에 안대희·양창수 대법관은 환자의 기대 여명이 적어도 4개월 이상이라는 점을 들어 ‘회복 가능성이 없다’는 다수 의견에 이의를 제기했다.

대상도 논란거리다. 이번 소송의 환자 김모(77·여)씨는 식물인간이다. 서울대병원은 18일 존엄사를 허용하면서 말기 암환자로 대상을 한정했다. 식물인간의 증세가 다양하기 때문에 존엄사 대상으로 볼지는 의료계 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연명치료의 범위도 마찬가지다. 심폐소생술 거부와 인공호흡기 중지는 대부분 동의하지만 영양 공급 중지 등은 이견이 심하다.

존엄사가 경제적 약자에게 남용될 우려가 있어 기준을 엄격히 만들 필요가 있다. 서울대병원이 18일 내놓은 사전의료지시서나 국회에 계류 중인 존엄사 법안이 미국이나 독일보다 다소 느슨하다는 지적이 있다. 반면 97년 이후 미국 오리건주에서 존엄사를 택한 401명 중 학사학위 이상 소지자가 60%, 백인이 98%인 점을 들어 반드시 저소득층이 남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주장도 있다.

대리인에게 결정권을 줄지, 준다면 어떤 방식으로 대리인을 정할지도 의견이 엇갈린다. 연세대 김소윤 교수는 “법을 만들 때까지 대한의학회가 사전의료지시서와 ‘회복 불가능’의 기준 등을 제시해야 혼란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존엄사가 제대로 시행되려면 호스피스를 확대해야 한다. 하지만 서비스 기관(34곳)이 부족해 연명치료를 중단하거나 거부한 환자가 이용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신성식 사회정책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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