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단순 사건 전달서 심층 뉴스 보도로 … 베를리너판, 정보 패러다임 바꾼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3면

“한국 신문의 미래를 위한 고무적인 출발점.”(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 교수)

“위기에 처한 한국 저널리즘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박영상 세종대 초빙 교수)

21일 ‘신문 판형 혁신의 평가와 미래전략’ 세미나가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영욱 한국언론재단 미디어연구실장,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박영상 세종대 석좌교수, 유홍식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장호순 순천향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형수 기자]


대판 신문에서 베를리너판으로 바꾼 올 3월 16일 중앙일보의 지면 혁신에 쏟아진 언론학자·전문가들의 평가다. 21일 오후 2시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선 한국언론학회(회장 김정기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와 중앙일보가 공동 주최하는 ‘신문판형 혁신의 평가와 미래전략’ 세미나가 열렸다.

3시간여 진행된 주제 발표·토론에서 전문가들은 “판형 변화는 외형적 스타일을 넘어 콘텐트의 혁신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김정기 언론학회장은 “신문의 퇴조를 우려하는 가운데 일대 혁신을 이룬 중앙일보 사례는 신문 전체의 미래 전략이라는 측면에서 연구 가치가 높다”고 밝혔다.

◆판형 변화는 뉴스 패러다임의 전환=발제를 맡은 남재일 경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중앙일보의 판형 변화가 “한국 신문의 혁신 작업 중 가장 전면적이자 실질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판형 변화는 ‘긴 기사는 길게, 짧은 기사는 짧게’ 하는 양자택일의 과정을 통해 기사의 ‘밀도’를 높인다. 이는 곧 편집·디자인의 세련화→기자의 취재 관행 변화→뉴스 생산조직의 개혁으로 이어진다. 남 교수는 “이런 면에서 뉴스의 패러다임을 사건에서 정론과 심층 정보로 전환하려는 한국 최초의 시도”라고 평가했다.

남 교수는 “세계 신문의 판형은 ‘축소’가 대세”라고 강조했다. 세계신문협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판을 바꾼 100여 개 신문은 대부분 타블로이드·베를리너를 택했다. 2005년 세계 77개국의 상위 10개 신문 중 60%가 판을 바꿨다. 반면 한국은 일제 강점기 이후 최근까지 일본공업표준에서 정한 대판 규격에 맞춰 왔다.

▶사전기사 검증시스템인 ‘팩트 체커(fact-checker)’제 ▶요일에 따라 발행하는 ‘레인보우 섹션’ ▶뉴스 분석 등의 도입·강화도 관심을 끌었다. 남 교수는 “불필요한 익명 보도를 줄이고 사실과 논평을 구분해 신뢰성을 높이는 한편 독자의 생활 리듬에 맞춰 생활밀착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고 말했다.

◆젊은 독자 “읽기 편한 신문”=이날 유홍식 서울여대 언론영상학부 교수는 대판과 베를리너판을 대조 실험한 결과를 공개했다. 같은 기사로 구성한 두 가지 판형을 대학생 76명에게 보여주고 반응을 살폈다. 참가자들은 판형 전환의 가장 큰 장점으로 ‘휴대하기 간편하다’와 ‘읽기가 편해졌다’를 꼽았다. ‘전반적으로 느낌이 좋다’ ‘이전보다 세련하다’ ‘활자가 마음에 든다’는 반응도 이어졌다.

참가자들의 긍정적인 반응에 대해 유 교수는 ▶작은 판이 이동 중 미디어를 소비하는 현대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부합할 뿐 아니라 ▶중앙일보가 2003년 디자인센터를 설립하는 등 철저히 준비했기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유 교수는 “실험 결과 판형 변화가 독자의 만족도를 높이는 한편 ‘중앙일보’라는 브랜드에 대한 태도도 향상시켰다”고 밝혔다. “판형 변화가 중앙일보가 국내 신문의 변화를 선도한다는 인식을 주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대조 실험과 별개로 진행한 설문(대학생·고교생 512명)에서 중앙일보는 경쟁지 A·B에 비해 다양성·전문성·심층성·정확성·신뢰성 등 항목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콘텐트 혁명과 병행, 개혁 완성해야”=남재일 교수는 “중앙일보가 추구하는 판 전환과 섹션화가 뉴스의 업그레이드를 넘어 공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홍식 교수 역시 “이제 ‘절반의 성공’을 거둔 만큼 앞으로는 공정성과 객관성을 통해 독자의 신뢰를 얻어 지면 혁신을 완성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천인성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전문가가 말하는 ‘베를리너’ 판형

 ‘신문의 위기’라는 말을 많이 한다.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 때문에 과감한 변혁을 시도한 중앙일보의 노력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중앙일보는 판형 전환과 더불어 다양한 광고 형식을 선보이고 있다. 신문 광고는 많은 정보를 반복해 전달하는 장점이 있다. 중앙일보의 노력이 신문 광고 전반 개혁에 영향을 주길 바란다. 젊은 층이 활자 매체를 멀리한다는 점이 아쉽다. 신문의 장점을 살려야 한다. 중앙일보가 변화를 이끌어 젊은 층이 신문을 보게 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전종우 단국대 언론영상학부 교수

중앙일보의 판형 변화는 굉장히 반가운 일이다. 한국 신문의 미래를 위해 고무적인 출발점이다. 판형 혁신에 이어 내용 혁신이 관건이다. 1980~90년대 미국의 많은 신문사가 디자인 개혁을 시도했다. 실패한 신문을 살펴보면 콘텐트 전환 없이 제호와 스타일·디자인의 변화에 그쳤기 때문이다.

이종수 한양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중앙일보는 가로쓰기, 전문기자제, 섹션, 일요판 도입 등 한국 신문의 변화를 선도했다. 판형 변화는 외형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기자의 역량 변화, 신문의 질적 도약을 위한 시스템 개선 등이 본질적인 의미를 갖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문에 대한 독자의 신뢰다. 미국·유럽에서 성공한 다분량 심층기사가 우리 사회에도 적용 가능한지는 신문이 독자로부터 받는 믿음에 달려 있다.

최경진 대구 가톨릭대 언론광고학부 교수

판형 변화는 한국 신문에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새 술은 새 부대에’라는 말처럼 신문의 콘텐트에도 변화가 있어야 한다. 신문은 가능한 한 많은 사람을, 특정 방향으로 이끌어가려는 정치적 주체로서의 역할을 탈피해야 한다. 좀 더 심층적이고 풍부한 정보,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구체적인 정보를 전달해야 한다. 텍스트를 벗어나 인포그래픽, 사진을 적극 활용해 종이의 장점을 살리길 바란다.

김영욱 언론재단 미디어연구실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